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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준철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서양중세사연구 서양중세사연구 제39호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145 - 171 (27page)
DOI
http://dx.doi.org/10.21591/jwmh.2017.39.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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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종교개혁의 으뜸원리인 이신칭의론은 기존교회가 공들여 정립하고 민중들에게는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종교적 규범들의 의미를 거부하거나 축소시켰다. 구원은 규범준수라는 선행/성화(聖化)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 믿음의 소산이라는 이 출범원리는 중세 말 민중들의 종교적 일상을 지배했던 강압적 기제로부터의 해방, 즉 ‘영적 자유’를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운동은 15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된다. 새로운 교리에 대한 이해부족과 종교적 나태의 만연이 개혁의 일선현장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개혁의 주체들은 강력한 규율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일종의 교회법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는 교회운영규정의 제정, 엄격하게 시행된 교리문답교육, 교구민들의 종교적·도덕적 행위를 정기적으로 검열하는 교구시찰 등으로 구성된 민중규율화는 그 자체로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인 ‘영적 자유’에 역행하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개혁가들은 이러한 자기모순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자유’의 취지가 개혁의 최전선에서 오·남용되어 ‘영적 방종’으로 현실을 좌시할 수 없었고 결국 자신들이 규탄했던 강압적 종교규범을 재도입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은 이념적 차원에서는 분명 근대의 출발이었다. 외부의 객관적·외형적 규범에서 자유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였고, 개인의 주관적·내면적 확신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독자적 주체로서의 개인을 상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6세기 독일종교개혁의 전개과정 속에서 민중은 여전히 외부 규범에 예속된 타율적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고, 이 점에서 종교개혁의 근대적 성격은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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