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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혜영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 역사 제35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05 - 14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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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 전기 후비는 어디에 살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고려의 후비는 정궁 밖의 궁(宮) 원(院)의 건물을 보유하며 궁주(宮主) 원주(院主)로 불렸다. 따라서 고려의 후비는 자신의 후비궁에서 살았는지, 정 궁에서 살았는지 아니면 후비궁과 정궁 모두에서 살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부왕(夫王) 생전과 사후로 구분하여 후비들 의 생활공간을 살펴보았고 이를 통해 고려의 사회사 정치사적 의미를 도출 하고자 하였다. 우선 후비궁의 공간적 기능을 보여주는 사료를 한 데 모아, 후비궁의 공간적 기능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후비궁에서 후비의 출산, 왕자녀의 양육 그리고 왕비 책봉 의식이 거행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들 기록만을 가지고 후비가 자신의 후비궁에 상주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후비는 출산 등을 위해 임시로 후비궁에 나갔던 것이다. 후비는 정궁 내 내전에 살았으며 특히 만령전(萬齡殿) 사례로 말미암아 후비는 국왕과 동일한 구역 내에 기거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신왕(新王) 즉위 후 정치 세력에 변동이 생기는 것처럼, 정궁 내 후 비들의 생활공간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부왕 사후 태후가 되지 못한 후비들은 출궁하여 자신의 후비궁에 살았던 반면, 신왕의 친모는 태후의 지위에 올라 계속해서 정궁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태후가 살았던 거소 (居所)가 고려사 백관지 입전주부의 ‘입전(立殿)’ 조항임을 확인하였다. 고려시대 혼인 풍속은 서류부가혼으로, 신부집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풍속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국왕의 아들과 딸을 외가에서 생장하게 하는 것은 외척 성장의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고려에서는 왕실과 외척, 공간적으로는 정궁과 외척집의 제3의 장소로서 후비궁이 존속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부왕 사후 태후가 되지 못한 후비는 자신의 후비궁에 나가 살았는데, 이는 고려에 일부종사와 같은 유교적 관념이 부재한 사회였기 때문으로 이해하였다. 마지막으로 정궁 내 후비의 거소 변화는 고려 왕실혼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이해된다. 고려의 왕실혼은 일부다처제로, 국왕 생전에 후비 내 차등이 명확하지 않다가 국왕 사후 태후로 높여지는 후비와 그렇지 않은 후비로 서열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고려의 후비제가 생활공간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부왕 생전 여러 후비들이 국왕과 동일한 구역에 기거하다가 부왕 사후 신왕의 친모만이 태후가 되어 독립 거소인 태후전을 설치하여 정궁 내에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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