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조선후기 교방 춤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조선후기 전국 지방관아 소속 교방 에서 연행되던 춤은 어떤 종목이 있으며, 어떤 환경적 공간에서 어떻게 춤이 연행되었는지 문헌을 통해 살펴 보았다.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관·사찬(官·私撰) 읍지(邑誌)와 연행기(燕行記), 통신사행록(通信使行錄), 그 밖의 문집 문헌을 통해 현대까지 전승이 확인된 외방향기의 춤 20종목의 목록을 수집하였다.
20종목의 대표 명칭은 <포구락(抛毬樂)>, <헌반도(獻蟠桃)>, <연화대(蓮花臺)>, <학무(鶴舞)>, <육화대(六花隊)>, <초무(初舞)>, <아박(牙拍)>, <향발(響撥)>, <무고(舞鼓)>, <무동(舞童)>, <쟁강무(錚江舞)>, <처용무(處容舞)>, <황창무 (黃昌舞)>, <검무(劍舞)>, <항장무(項莊舞)>, <선유락(船遊樂)>, <승무(僧舞)>, <관동무(關東舞)>, <남무(男舞)>, <의암 별제가무(義庵別祭歌舞)>이다. 평안도의 9개 지역 교방 춤과 황해도의 2개 지역 교방 춤, 경상도 4개 지역 교방 춤, 전라도 2개 지역 교방 춤, 강원도 원주 교방의 춤 목록을 취합한 결과이다.
20개 춤들의 전승 및 공연활동의 주체는 각 지방관아 소속 기녀들이다. 청나라와 일본으로 왕래한 사신들을 위로하는 국내 잔치에서 공연이 이루어진 기록이다. 주로 사행(使行) 길의 숙박지에서 위로공연이 펼쳐졌 는데, 관내 누정(樓亭) 등의 연행공간으로 사신들이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공연이 베풀어졌다. 관내 수령(守令) 에 의해 잔치가 준비되고, 관할 지역 내의 기녀들이 광범위하게 동원되어 공연활동에 참여했다.
조선후기,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년)으로 경기(京妓)가 혁파된 후 궁중에 내연(內宴)이 있을 시, 지방의 향기들 중에서 가무의 기예가 우수하고 외모가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궁중에 올려보내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자기 출신 지역으로 되돌려 보냈다. 20종목 중 <황창무>, <의암별제가무>, <승무>와 <남무>를 제외 하고 16종목은 모두 『의궤』를 통해 궁중연향에 쓰인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추어진 춤의 무보가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되었다. 다만 <관동무>는 『정재무도홀기』에 전하지 않는다. 헌종 무신년 진찬 관련 홀기가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기록인 『정재무도홀기』에 기재된 종목이라도 그 춤을 춘 17~19세기 연행자는 주로 조선후기 외방 여기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다만, 현존한 『정재무도홀기』가 주로 고종 대의 것이므로 이때는 향기와 경기(의녀, 상방)가 함께 연행했던 기록이다. 경기의 충원도 향기 중에서 선정되었다. 따라서 궁중 기록의 춤 종목일지라도 그것이 궁중 공간에 한정하여 전승된 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미다. 외방여기들이 궁중과 소속지역 교방 간의 밀접한 교류로 공연 활동했던 양상을 종합 참작하여 교방춤과 궁중무용의 분류가 새롭게 제시되길 바란다. 이는 한국무용사학 분야의 면밀한 검토와 재론이 필요한 논제이며, 무형문화재 무용분야의 분류체계를 바로 세우는 토대 연구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history of dance performed at gyobang duildings the late Joseon dynasty. Aliterature review was conducted to identify types of dances performed at gyobang buildings to regional government offices across the country and how these dances were performed and in what spatial environment. Specifically, a list of twenty oebanghyanggi dances that have been passed down to the contemporary era were compiled based on records from town chronicles published both publicly and privately, Yeonhaenggi(an essay on trip to Qing dynasty), and Tongsinsahaengrok(records from a visit to Japan) published between the six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Records show that, except for four dances, all twenty oebanghyanggi dances were performed at royal court banquets. It is a general understanding that all dances recorded in ‘Jeongjaemudoholgi’ were royal court dances, while dances performed at local government offices were folk dances or folk gyobang dances. However, a new classification of gyobang dances and royal court dances is needed in consideration of dance performance of oebanghyanggi based on their close exchange with royal court and local gyobang. This is an area requires further discussion and reexamination in the study of Korean dance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