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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윤재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의료역사연구회 의료사회사연구 의료사회사연구 제2권
발행연도
2018.10
수록면
103 - 126 (24page)
DOI
10.32365/KASHM.20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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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백인제는 4년 동안 서양의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수술로 상징되는 서양의학은 백인제에게 과학이고 문명이고, 수용해야할 대상이었다. 백인제는 강연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했고, 비과학적인 한국인을 계몽하고자 했다. 그는 경의전의 일본인 교수와 공동으로 수혈이나 구루병(佝僂 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백인제는 일본에 동화된 근대를 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삼일운동에 참여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제는 한일 간에 존재하는 차별을 인식하고 있었다. 백인제가 근무했던 경의전 에도 차별은 존재했다. 전체 교원 중 한국인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백인제는 한국인을 유태인에 비유했다. 일본식 근대에 대한 거리두기는 백인제가 일제의 친일 협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었다. 해방 후 백인제는 흥사단, 한국민주당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사회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시에 수선사라는 출판사를 창립하였는데, 자신이 식민지시기부터 가지고 있던 자유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백인제는 전체주 의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 그 대안으로 자유주의를 지향하였다. 자유주의는 흥사단의 기본 이념이기도 했다. 분단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백인 제는 남한 단독 선거에 출마하였다. 그에게 1948년 총선 거는 국가와 민족을 분열시키는 선거가 아니었다. 국제적 승인 아래 진행되는 자유선거였다. 백인제는 반공에 기초한 대한민국 국가체제에 동의했다. 의료적인 측면에서 좌파가 의료국영화를 주장한데 대응하여, 백인제는 자신이 설립한 백병원을 재단법인으로 전환시켰다. 문화적 실력 축적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재단법인 설립은 식민지시기 이래 백인제가 추구한 문화적 실력양성운동의 연장 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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