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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새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22권 제1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 - 33 (33page)
DOI
10.35161/rkapt.2023.03.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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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의 세습신분제가 붕괴되고 이른바 사민평등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대로이다. 메이지 초기에 활약한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는 신분제 붕괴가 가져온 변화에 가장 민감했고, 중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벌제도는 부모의 원수”라는 저 유명한 말을 남기고, 메이지유신이 신분제 붕괴를 가져온 혁명임을 말하며, 신분제로부터의 해방이 가져온 ‘자유’를 중시했다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붕괴된 도쿠가와 일본의 신분제 질서가 어떤 원리에 입각해 운용되었고, 왜 19세기 중후반에 그 질서가 무너지게 되었는지, 또 후쿠자와의 사상은 이러한 신분제 붕괴의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해 나갔는지 등의 문제를 연결시켜 고찰한 연구를 찾기는 어렵다. 그의 ‘문명(文明)’론에서 세습신분제에 대한 비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이와 같은 의문점들을 해결하는 일은 분명 의의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이 글은 후쿠자와의 주요 저작 중 그의 국민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의 첫 단계였다고 할 수 있는 학문의 권장이 집필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신분제 문제와 그의 사상의 관계를 분석한다. 집필 동기와 과정에 관해, 텍스트 배경에 있는 시대적 변화와 연동시켜 면밀히 분석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폐번치현(1871) 단행 이전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메이지 유신을 전후로 한 정치/사회적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의 ‘문명개화’론 성립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후쿠자와가 ‘문명개화’의 가장 중요한 전제 중 하나로 생각했던 ‘문벌제도’의 폐지에 관한 논의를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문벌제도’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도쿠가와 시대의 신분제에 관한 연구사를 참고하여, 정치질서의 성립 원리와 사회질서의 그것이 분리되어있던 상황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도쿠가와 일본 사회는 어떻게 질서의 안정을 유지하였고, 무엇이 원인이 되어 끝내 무너지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목차

국문요약
Ⅰ. 서론
Ⅱ. 신분제 사회에 관한 논의
Ⅲ. 메이지 초기 신정부의 개혁 의도와 후쿠자와의 기대 수준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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