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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종명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1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191 - 22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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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말부터 1950년대 상반기까지의 남한 신문들은 여순사건과 지리산 지구 빨치산 전쟁을 재현하면서 그것들을 여성화하고자 하였다. 지리산 빨치산의 여성화 경우, ‘조경순’(趙庚順)을 매개로 하여 보다 일반화되고 전면화되고 있었다. 신문 지상에서 조경순은 이윽고 신문 지상으로 주연으로 재탄생되고, 그러한 것은 신문 보도에서 계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주역으로서의 그녀 지위는 당대 대한민국의 문화 기획품인 ‘지리산 작전’에 의해 승인되고, 그녀의 주역성은 ‘장편 기록 영화’를 통해 재현되었다. 이러한 문화 기획물들은 무엇보다도 조경순의 선정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를 구경거리(spectacle)로 만들었다. 구경거리로 만들어졌던 조경순은 당대 신문 지상에서 ‘전형적인 신(新)여성’으로 제시되었다. 관계 기사는 그녀를 여성 기독교 신자로서 근대 직업교육 기관인 의과대 ‘간호부 양성소’를 이수하고, 이후 ‘간호부’로 의대 부속병원에 근무하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신여성적 존재’로 재현하였다. 또한 당대 신문들은 그녀를 ‘도시적 여성’으로 재현해, 그녀의 ‘서구적 근대성’과 ‘비(非)민족성’의 이미지를 생산하였다.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민족적 순결성을 의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비민족적 존재로 표상된 조경순은 다시 무비판적이고 비자주적인 ‘맹목적 존재’로 재현?표상되었다. 또한 조경순의 비주체적 의식과 행위는 개인과 공동체에 “막대한 피해”만을 결과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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