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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논집 한국철학논집 제49호
발행연도
2016.5
수록면
39 - 7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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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제물론』 해석 과정에서 왕부지와 박세당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명(明)’ 해석을 진행하고 있다. 왕부지는 「제물론」에 세 번 등장하는 ‘명’ 가운데 앞의 첫째와 둘째 ‘명’을 ‘일곡지명’으로 규정하여 시비대립의 주체들의 편견으로 지적하여였다. 그리고 세 번째 ‘명’을 ‘편조지명’?‘진지지명’으로 규정하고 그 작용적 특징을 ‘활의지요’로 설정하였다. 반면 박세당은 세 차례 등장하는 ‘명’을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 특징을 ‘천리지명’?‘천리지공’으로 규정하는 한편 왕부지가 강조했던 ‘활의지요’는 ‘명에 의한 교화 대상’으로 그 의미를 제한하였다. 또한 「제물론」 본문 ‘이시기소비이비기소시(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 부분에서 보이는 왕부지의 해석은 『장자』 「제물론」 원문의 의미 변형을 동반하고 있다. 비록 단편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통해서 「제물론」 해석의 다양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왕부지와 박세당의 ‘명’ 해석은 그들의 현실 대응론으로 연결되어 양자 간 사상적 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 역할을 한다. 곧 ‘「제물론」 명 해석이 왕부지와 박세당의 현실 대응론에 응용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중심 가설이다. 왕부지와 박세당은 17세기 동북아시아의 격변기를 삶의 무대로 활동한 사상가로서, ‘이 두 사람의 「제물론」 독특한 명(明) 해석이 각자의 현실 대응론에 응용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중심 가설이다. 명의 유신을 자처하며 평생 반청의식을 고수하면서 ‘명 멸망의 원인’에 대한 역사적 회고에 전념했던 왕부지는 국내 정치에 대해서 강경한 원칙적 대응을 자제하고 현실의 유동성과 상황의 가변성에 입각한 대응, 곧 상황에 따라 고안되는 임시 원칙의 활용’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현실 대응론은 『장자』 「제물론」 해석 과정에서 ‘편조지명’과 ‘활의지요’로 그 특징이 압축된다. 한편 17세기 조선 정계에서 서인 소론으로 활동했고, 정계 은퇴 이후에도 줄곧 서인 노론과의 정쟁을 이어갔던 박세당의 경우는 ‘활의지요’를 강조했던 왕부지와는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우선 『장자』 「제물론」 해석 과정에서 박세당은 ‘활의지요’에 제1의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명에 의한 교화의 대상’으로 그 의미를 강등하여 해석했다. 또한 박세당은 ‘명’을 ‘천리지명’?‘천리지공’으로 해석하여 ‘공명성에 의거한 원칙적 현실 대응론’을 주장하였으며, 이는 그의 ‘대청외교론’에도 적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제물론」 ‘명’ 해석과 ‘시비 대응론’을 기준으로 왕부지와 박세당의 현실 대응론을 정리하면, 왕부지는 ‘현실의 유동성에 입각한 탄력적 대응’을 강조하였고, 박세당은 ‘공익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원칙적 대응’을 중시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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