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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韓梅 (중국 산동대)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54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323 - 34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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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엄하고 까다로운 면이 가끔 드러나지만 천명과 민심에 부응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유능한 황제요, 인﹒효﹒예 등 유학적 덕목을 두루 지닌 성군 등 긍정적인 인물로 형상화된 것만큼 폭군의 모습이 두드러진 중국 문학에서의 이미지와 크게 차이가 난다. 본고는 한국 고전문학에서 나타난 명태조의 형상을 정리하고 그런 형상을 만들고 부각시킨 작가들과 그 소속집단의 명태조 관련 직﹒간접적인 체험과 기억, 그들의 사상의식, 현실적 욕구 등과 결합시켜 그 형성원인을 조명하고 그 형성﹒변천과정에서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명태조의 유능한 황제 이미지는 여말선초 친명파 문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17세기 명나라 멸망 후 중국의 역대 황제 중에서도 1인자로 추앙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성리학의 수용에서 비롯된 정통적 화이사상 즉 한문화, 한족 정권의 정통성 인정,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형성된 개인적 호감, 그리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과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에서 형성된 동류의식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명태조의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도덕군자 이미지는 16세기 사림파 문인에 의해 강조되었다. 이는 조선의 군주가 따라 배우도록 명태조라는 이상적인 군주상을 제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17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문학에서 명태조의 성군 형상이 한층 더 완벽해졌을 뿐 아니라, 그 향유층은 한문 식자층에서 한글 식자층까지 확대되었다. 그런 와중에 명청교체가 이루어지면서 고조된 존명반청(尊明反淸)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명태조의 까다로운 종주국 군주 형상은 명태조의 은혜와 위엄을 병행하는 대(對)고려, 조선 정책에 상처를 입은 문인의 기억이 전승된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그외에 명태조는 대국 천자의 이미지로 민간설화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민중들이 빈민에서 황제로 상승한 명태조의 형상을 빌려 신분상승의 욕구를 표출하고, 이성계와의 비교를 통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이미 형성된 명태조의 긍정적 형상에 설화적인 상상을 더해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고전문학에서 명태조 형상의 형성과 변천 과정에서 크게 작용한 요소는 3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문학 형상화 대상 자체의 행동이 중요하다. 명태조가 중국에서 문자옥을 비롯한 참혹한 통치로 악명을 얻은 반면에, 고려와 조선에 대한 평화적 외교정책을 시행한 것이 한국 고전문학에서의 긍정적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영향력이 큰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말선초 친명파 문인들의 명태조 미화가 명태조의 긍정적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작가 및 그 소속 집단, 사회의 욕구가 이국 인물의 형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명태조의 긍정적 이미지가 17세기 중후반에 극도로 미화되고, 또 그 형상이 광범위하게 수용된 원인은 명태조의 완벽한 성군 만들기가 조선사회에서 명에 대한 감은(感恩) 의식, 동정 및 추억, 청(淸)에 대한 멸시와 적개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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