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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상준 (전북대학교) 여영기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33권 제1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73 - 10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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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조 대 절제(節製)의 구체적 시행 양상을 분석하여 정조 대 절제 운영 양상을 살펴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절제에 응시하는 유생들의 규모에 따라 정조 즉위년(1776)~정조 7년(1783), 정조 8년(1784)~정조 17년(1793), 정조 18년(1794)~정조 24년(1800) 세 시기로 구분하고, 통방외 여부, 시제, 은사규모를 중심으로 절제의 운영양상을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는 다음와 같다.
정조 즉위년(1776)부터 정조 7년(1783)까지는 「태학생원점절목」이 효과를 거두면서, 원점유생들이 대폭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성균관의 정원이 유생의 거재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정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방외 절제의 시행을 확대한다. 이 시기 절제의 시제는 대부분 표·책·전·배율로 출제 되었고, 직부 전시의 은사는 잘 제한되었다.
정조 8년(1784)부터 정조 17년(1793)까지는 통방외 절제가 점차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절제에 향유가 응시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많은 향유들이 상경하였을 때 정조는 통방외 절제를 시행하고 경유와 향유를 각각 다른 시제로 시험하였다. 정조는 향유를 실재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경표향부, 생·진표유학부의 형태로 시제를 구분하여 교육 인재선발과 향유위무를 동시에 해결하였다.
정조 18년(1794)부터 정조 재위 말까지는 통방외 절제의 응시규모가 대폭 증가하였다. 증가한 응시자의 대부분은 향유였다. 시제는 경표향부, 생·진표유학부 형태로 출제되었다. 정조 18년(1794)부터 20번의 통방외 절제 중 15번이 수권수 1,000장이 넘는 대규모 통방외 절제였다. 이 시기에는 시제가 일부 이완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전시기와 마찬가지로 시제의 분리를 통해 관학유생의 학업점검과 성균관을 통한 인재선발이라는 절제 본연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향유를 위로하였다.
정조는 성균관 교육 정상화를 위해 절제를 중요한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비록 재위기간 동안 원점유생을 중심으로 절제를 운영하지는 못하였지만, 응제를 시행하여 그 역할을 대신했고, 절제의 응시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시제를 분리하거나, 직부전시의 은사는 제한하되, 급분의 은사를 늘리는 등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인재선발과 유생위무를 실현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태학생원점절목」과 성균관 거재상황의 변화
Ⅲ. 정조 대 절제의 운영양상
Ⅳ. 결론
참고문헌
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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