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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우 (경상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2023권 제2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261 - 28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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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북 동부의 소위 ‘가야봉수’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쓴 글이다. 烽燧는 밤에 불로써 알리는 烽 과 낮에 연기로써 알리는 燧를 합친 말이며, 다른 용어로 烽火라고도 한다. 烽火는 어원상 烽燧보다는 오래되었지만, 조선 후기까지도 봉화와 봉수는 혼용하여 쓰였다. 조선시대 봉수와 구분하기 위해 전북 동부 봉수를 ‘가야봉화’라 하고 있지만 봉수가 맞다면 ‘가야봉수’라 하여도 무난할 듯하다. 가야봉수를 설명하는 용어인 發火 施設, 發火, 테뫼식 城壁, 烽候(火)制를 검토해 보았으나, 發火 등 봉수에 적용하기 어려운 용어가 있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가야봉수의 구조와 축조기법, 유물의 종류와 출토관계를 정리한 결과, 가야봉수는 동일한 정치체가 운영하였음에도 구조의 다양성, 출토유물의 빈약함과 무기류의 不在, 봉수군 편성의 어려움, 재와 같은 사용흔 미확인, 연대 분석(AMS) 결과 고려 및 조선시대로 판명 등 가야봉수로 보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특히, 山頂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봉수대로 규정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있었다. 한국의 오래된 방어전략은 성곽으로 입보하는 淸野入保 정책과 산으로 피신하는 隱身策이었다. 전북 동부지역 山頂이나山腹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6세기 전후 전쟁 시 일시에 몰려든 가야 피란민의 부산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또한 가야봉수의 유구 검토에서도 기능별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전북 동부지역 가야봉수 중 봉수로 볼 수 없는 것과 기능별로 ‘烽燧·祭壇·望臺’로 구분하여 연구대상 봉수에 적용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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