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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저널정보
한국유라시아연구원 유라시아문화 동북아고대역사 제3권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45 - 115 (71page)
DOI
10.47527/JNAH.2020.08.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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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에 대한 필자의 기존 연구에 근간 『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를 추가, 만발발자 제천유적의 분기별 변천상을 새롭게 조명한 연구이다.
1기-조단(B.C.4000~B.C.3500년)의 시기, 선도사상의 요체인 삼원(천·지·인, 원·방·각)의 상징성을 요령 있게 담아낸 거대 규모의 적석단총, ‘3층원단(모자합장묘)·방대’가 조성되었다. 그 주인은 배달국 초 환웅족이 가져온 선진적 선도제천문화를 수용하여 토템족 웅족사회를 천손족 맥족(환웅족+웅족)사회로 바꾸어놓은 역량 있는 선인 지도자 웅녀군이었다.
1기(B.C.4000~B.C.3000년, 배달국 전·중기) 제천단의 거대 규모와 대비되는 간결하고 담백한 제천의 흔적은 선도제천문화의 태동기,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 충실한 선도제천문화의 출발점을 보여주었다.
2기(B.C.13세기~8세기, 단군조선 후기) 만발발자의 드넓은 소도제천지에는 3층원단·방대의 국부에 주·부 제천사 2좌가 들어서 있었을 뿐이었다. 1기에 자리 잡힌 소도제천문화의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3기(B.C.8세기~B.C.3세기, 단군조선 말기)가 되자 소도제천문화가 크게 형식화되고 번잡해졌으며, 이전에 보이지 않던 위계성까지 생겨났다. 단군조선 말기 맥족사회의 분열·와해 국면 속에서 선도제천문화도 세속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4기(B.C.3세기~3세기, 고구려 개창기)가 되자 종래 번속화 방향으로 흘렀던 소도제천문화는 재차 간결화되면서 새로운 안정 국면을 맞았다. 고구려의 개창으로 맥족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는 시대분위기와 맞물린 변화였다.
5기(3세기~5세기, 고구려 중기)에는 제천시설의 중첩 및 소규모화 현상, 또 제천공간의 축소 현상이 두드러졌다. 고구려 중기 선도제천문화의 위상이 서서히 약화되어 가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의 편찬 및 발굴 경위
Ⅲ. 『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에 나타난 분기별 변천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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