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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유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저널정보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교회사학 제22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11 - 14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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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근 신부는 초창기 한국인 사제이며 개항기 이후, 조불조약을 기점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는 시기에 살았던 성직자였다. 한기근 신부 서한은 1902년부터 1925년까지 한국교회 상황을 제시하며, 한기근 신부가 본당의 사목자, 기관장(출판사), 학자(번역 및 글)로서 충실한 사제였음을 드러내었다. 본 논문은 한기근 신부 서한 중 1902년부터 1905년까지 황해도 지역에 파견되어 작성한 서한에 집중하였다. 그러한 이유는 해서교안이 진행 중이던 황해도 지역 교회로 파견되어 황주 본당 설립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서교안의 여파로 신자들이 천주교를 멀리하여, 가장 풍성한 전교 지역이었던 황해도교회가 어려운 전교 지역으로 전락한 현실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천주교라는 이름 자체를 싫어하는 반대자들과의 관계에서 사목자로서 견디어내는 어려움을 서한으로 기록하였고, 1902년에 정점을 이룬 해서교안 중, 박정모 사건을 통해 교회와 지역주민, 지방관리와 사회, 경제적 갈등 상황을 직접 겪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한기근 신부의 황주 본당 설립은 한국인 사제가 개척한 본당이 실패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안 중에도 황주 본당을 지키며 신자들을 기다렸고, 떠나간 신자들의 회두와 예비신자에 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목자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기근 신부 서한은 황주 본당 설립 과정을 통해 한기근 신부가 황주 공동체 선익을 위해 본당을 지켰던 사목자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한기근 신부는 조선 사회와 천주교회의 갈등으로 한국교회가 겪었던 과도기이며 침체기의 상황을 서한으로 기록하여 본당 사목자로서의 고뇌와 갈등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또한, 해서교안으로 어려웠던 교회 상황, 교세가 개신교에 의해 뒤집히는 교세 현황을 직접 경험하며 사목자로서 본당을 지키며 한국교회 성직자로서 최선을 다했던 기록이 한기근 신부 서한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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