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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석원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 소속 수원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교회사학 제1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41 - 291 (5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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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지역에는 1799년 이전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며, 1810년대에서 1820년대에 걸쳐 은이와 굴암에 신자들이 모여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830년대에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사목활동을 하자 1830~1860년대에 용인의 산골지역에 많은 공소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양지면 남곡리와 대대리 지역, 이동읍 묵리와 서리 지역, 원삼면의 학일리와 사암리 지역, 수지구 동천동 손골이 용인 신앙공동체의 중심 지역이었다. 1876년 선교사의 재입국을 계기로 용인지역에서 신앙공동체가 재건되었는데 1866년 이전부터 확인되는 신앙공동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소가 증가하고 교세가 확장되면서 왕림본당에서 미리내본당(1896년)과 하우현본당(1900년)이 분리 신설되었다. 1913년에는 미리내본당에서 분리된 압고지본당이 최초의 용인 지역 본당이 되었고, 1927년 양지본당이 미리내본당에서 분리되었다. 1930년 압고지본당과 하우현본당이 폐쇄되면서 그 관할 공소가 양지본당과 북수동본당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천주교회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용인 중심지에 용인본당(1959년)이 신설되었다. 1963년 수원교구 설정으로 용인지역은 수원교구에 편입되었다.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외부에서 신자들이 많이 유입되자 수원교구는 많은 본당을 신설하여 2018년 현재 용인지역에 30개 본당이 자리 잡게 되었다. 용인지역에 신앙공동체가 뿌리내리기까지 온갖 우여곡절과 시련이 있었지만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신앙의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 신앙의 유산과 유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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