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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신윤호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신윤호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저널정보
한일군사문화학회 한일군사문화연구 한일군사문화연구 제37권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120 - 147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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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해전의 전개과정을 보면 조선수군이 일방적으로 승리하였다. 1차・2차 출전에서 조선수군을 발견한 일본군은 달아나기 일쑤였고, 육지 언덕에 포진하여 탄환을 난사하는 등 소극적이고 수비 위주의 전술이었다. 일본군선의 화려한 외형은 해전에 대한 개념이나 준비가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본수군의 실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전투는 3차 출전 중에 있었던 한산도해전이었다. 그전까지는 해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약탈・방화하며 주둔해 있던 일본수군을 발견한 후 일방적 공격을 퍼붓는 상황이었던데 반해, 한산도해전은 일본수군이 조선수군을 목표로 출전하여 정면으로 대결했다는 점이다. 이 전투에서 전투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조선수군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형화포를 발사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전술 앞에 일본수군의 근접전인 등선백병전은 소용이 없었다. 이와 같은 양국 수군의 해전 수행능력의 차이는 대형화포 운용능력에 있었다. 한산도해전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형화기를 실을 수 있는 대형선박 건조를 지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수군은 사기가 충천하였고 부산지역을 목표로 4차 출전하였다. 한산도해전 이후 일본군은 해전을 금한 채 부산을 중심으로 거제도 등지에 성을 쌓고 수비에 돌입하였다. 부산포가 보급기지로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었다. 임진년 4차에 걸친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연승을 거두었지만, 전란발발 이전에는 양국이 서로의 수군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수전에 강하지만 육지에 오르면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육상전 대비에 집중하였다. 일본은 해전을 위한 수군을 편성하지 않았는데, 조선수군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발발 후 해전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서로의 전력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임진년 해전의 결과에 대한 의의는 조선과 일본의 수군발달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의 수군은 고려말・조선초 기승을 부리던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판옥선 개발이었다. 일본군선보다 크고 견고하여 대형총통을 탑재하여 운용할 수 있었는데, 왜구와 싸우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된 전선(戰船)이었다. 이러한 수군의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선을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이순신은 바다에 익숙했던 해안지역 백성들을 수군으로 징발하도록 지속적으로 건의했던 것이다. 일본의 수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복속된 여러 다이묘들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작전지역으로 군량・무기 등을 선박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임진년 조선침략군 편성 당시 선봉행(船奉行)이 있었는데, 이들은 침략군이 일본 나고야-이키-쓰시마-부산(조선)으로 원활하게 도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수군이 1, 2차 출전하여 무찔렀던 대상이 바로 선봉행의 일부였다. 조선수군의 일방적 승리 과정에서 본 일본수군의 행태는 그들이 해전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에서도 해전을 위한 수군을 편성하여 조선수군을 공격하였다. 곧 한산도해전으로 이어졌고 비슷한 규모의 조선수군과 정면 대결하였음에도 참패하였던 결과는 양국 수군의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후 도요토미가 해전을 금하고 부산・거제 지역을 굳게 수비하도록 하였으며, 대형선박을 건조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보아도 해전 수행능력이 조선수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개 일본의 전통수군이라 함은 중세 해적단으로서 약탈적 성격이 강하고 남보다 앞서 공격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조선수군이 국가의 정책하에 발달하였으며, 군사제도의 정연한 지휘체계 속에서 활동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또한 조선은 해전을 목적으로 배를 만들었지만, 일본은 운송을 목적으로 배를 만들었던 점이 군선의 기능에 큰 차이를 가져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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