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인구학회 한국인구학 한국인구학 제46권 제4호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83 - 105 (23page)
DOI
10.31693/KJPS.2023.12.46.4.4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의 《역중일기(曆中日記)》를 바탕으로 18세기 전염병의 유행 양상을 추적하였다. 더불어 전염병 유행에 대응하여 최흥원과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생존 전략을 구사하였는지 살펴보았다. 50년에 육박하는 《역중일기》에서는 2,338회의 질병 기록과 836회에 이르는 사망 기록이 확인되었다. 특히, 1742년의 경우 질병 및 사망 기록이 총 158회 확인되었는데, 이는 《역중일기》연간 기록 중 가장 높은 횟수를 보이는 수준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등 관찬 사료에서도 1742년 전염병 유행 양상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한편, 《역중일기》에는 1742년 천연두(痘瘡) 유행으로 최흥원의 장모, 외숙 등이 사망하는 등 급박하였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742년은 아직 천연두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최흥원은 천연두 감염을 피하기 위하여 식솔을 거느리고 장기간 피접에 나서게 된다. 임시 거처는 주로 경주최씨 친족의 영향권이 미칠 수 있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이처럼 1742년 전염병 유행 속에서 가족이 존속하는 것에 성공한 배경은 상호부조를 통한 가족연대에 있었다. 요컨대, 18세기 대구부 최흥원 가족이 전염병 유행 속에서도 가계를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가족 사이의 연대가 일족의 연대로, 그리고 일족의 연대가 지역의 연대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자료 소개 및 연구방법
Ⅲ. 《역중일기》의 질병 및 사망 기록 추이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89239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