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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병희
저널정보
한국기초조형학회 기초조형학연구 기초조형학연구 제18권 제1호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259 - 270 (1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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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서화협회의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도화교사로 후학을 가르친 교육자, 서양화로 삽화를 처음 그린 근대화단의 선구자이다. 또한 새로움과 도전을 바탕으로 서양화와 한국화에 있어 한국화단에 영향력을 준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고희동의 서양화 작품인 자화상 3점은 정자관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국인임을 나타냈으며 외광파 영향을 받아 어두운 배경에 빛의 효과를 강조하였다, 『청춘』창간호에 게재된 <공원의 소견>(1914)은 공원 벤츠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조선청년을 그린 작품으로 청록색의 나무와 공원의 잔디가 어두운 색조로 그려 외광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부터 작고 할 때까지 주로 그린 작품은 한국화로 고희동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희동이 한국화를 배운 시기는 1907년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문하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이후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귀국 한 후에도 전통회화를 바탕으로 남종화의 정신을 담은 작품을 그렸다. 이 시기 고희동은 동양화의 발전을 위해서 서양화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화에 서양화 기법을 도입하여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정선을 진경산수화의 시작으로 삼았으며 실경을 바탕으로 서양화법을 적용한 <진주담도>, <금강산 천선대>, <금강산도> 등의 진경산수를 그렸다. 이처럼 고희동은 전통화풍을 근간으로 서양화법을 절충한 작품, 한국화에 서양화 요소를 혼성한 개성적인 진경산수화, 채색화 등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그린 한국화단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예술가이다. 서양화 기법을 사용한 고희동의 전통화와 진경산수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감각을 혼성해 그린 독창적인 한국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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