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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은미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48호
발행연도
2024.4
수록면
35 - 6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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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해상교역을 통해 많은 상품들이 교역되었는데 그중 향료는 그 수입이 매년 수십만 근에 이르렀고 총 수입량의 1/4을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다양한 향료가 유입되었고 그 영향은 차문화에도 미쳤다. 차에 향료를 사용한 흔적은 중국의 경우 오대십국시대부터, 한국의 경우 고려시대에 보인다. 차에 향료를 사용한 한중의 공통적인 흔적으로 ‘뇌원차’라는 명칭이 오월과 고려에 남아 있다. 오월국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고려에서 사용한 뇌원차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제조방식의 보급에 따라 고려에서 자체적으로 뇌원차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고려의 뇌원차는 산지에 따른 명칭이 아니라 향료를 이용한 차의 제조방식에 따른 명칭으로 보는 것이 한국과 중국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977년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뇌원차의 기록이 사라진 원인으로는 오월국이 송에 병합되어 멸망하였기 때문이고, 송대 제다기술의 발전으로 온전히 차만을 마시는 방식이 정착되기 때문이다. 향료무역이 활발해진 송대에는 민간에서도 향료를 다양하게 소비하였다. 도시 거리 곳곳에 香鋪와 藥鋪가 운영되었고, 먹거리로 향약과 향약과자가 판매되었다. 향은 분향, 식품, 약용 등으로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었다. 향료 소비의 대중화와 다양화는 차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살펴보면 송원시대에는 배합차와 향차의 발전으로 나타났다. 북원차를 대표적으로, 차 맛을 돋우기 위해 용뇌를 사용했던 방식은 원풍연간 밀용운이 첨가물(용뇌) 없이 제작됨으로써 그 기본 용도를 잃었지만, 기호에 따라 즐기기 위해 용뇌를 첨가하는 방식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송대 공차의 맛과 향을 높이려는 용도로 사용되던 용뇌는 이제 기호에 따른 선택의 용도로 변화되었다. 교류가 더 활발했던 원대에 이르면 향료 등 남해 산물들은 더욱 넓고 다양하게 소비되었다. 복건의 공차인 납차에는 여전히 향료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 밖에 향료는 민간에서도 다방면으로 다양하게 소비되어 심지어 泉州에서는 檳榔이 차를 대신하기까지 하였다. 남해무역을 통한 향료무역의 발전은 이전에 없던 다양한 기호를 창출하는데 일조하였다. 용뇌와 같은 향료는 차뿐만 아니라 탕류(諸品湯)와 음료수(諸品渴水), 찬류(飲饌類)를 만들 때도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 차 문화에서도 차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양한 착향과 배합을 통해 이전에 없었던 다양한 차를 즐기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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