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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주영민
저널정보
영남고고학회 영남고고학 영남고고학 제99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153 - 18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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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수립 이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고려 분묘유적은, 1968년에 사적 제164호로 지정된 진주 평거동 고려고분군, 1988년에 사적 제323호로 지정된 윤관 장군의 묘 등이 유일하고, 이 두 유적의 사적 지정 준거는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위상은 특정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동시에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치의 희소성과 유일성이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관인분묘의 원형을 상실한 윤관 장군묘가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인물이 가진 국난극복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서희 묘역을 살펴보면 고려의 관인분묘의 외형을 일부 유지하면서 조선시대 관인분묘로 변모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희 묘역의 이러한 양상은 묘역이 고려시대에 처음 조영되어 조선시대에도 계속 유지․관리되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음으로 서희 묘역의 고고학적 검토를 통해서 종래의 연구와 같이 고려 전기 관인들이 일률적으로 매장지로 개경과 근기 지역을 선호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논문에서 고려 시기 묘지명 자료를 재검토해 보았다. 검토 결과 적어도 고려 관인들이 본격적으로 개경과 그 일원을 매장지로 활용한 시기는 문종 시대부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고려의 각종 제도가 법제화되고 개경의 위상이 새롭게 확립되었던 고려 문종 이전 시기에는 고려 관인들이 비록, 본거지를 개경으로 이거를 하였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출자지와의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려 문종 이전 시기에 서희 묘역이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에 조영 되었을 가능성은 크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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