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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진훈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1輯
발행연도
2020.4
수록면
57 - 99 (43page)
DOI
10.31335/HPTS.2020.04.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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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관인층의 묘지명은 사망한 친인을 매장한 장소에 대해 거의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지금처럼 정확한 위치 표기가 어려웠던 당시에 고려 관인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매장지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가장 일반적인 매장지 위치 표기 방식은 행정구역명을 기준으로 표기하는 방식, 산과 같은 자연지형물을 중심으로 표기하는 방식, 절과 같은 인공구조물을 중심으로 표기하는 방식, 개성을 중심으로 표기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러한 방식들은 또 다시 여러 가지로 세분된다. 예를 들어 행정구역명을 기준으로 표기하는 방식은 단순히 광역행정구역명만을 표기하는 방식, 광역행정구역명과 하위행정구역명을 같이 표기하는 방식, 행정구역명과 자연지형물을 같이 표기하는 방식, 행정구역명과 인공구조물을 함께 표기하는 방식, 행정구역명 다음에 자연지형물과 인공구조물을 함께 부기하는 방식, 행정구역명 다음에 인공구조물과 하위 행정구역명을 같이 표기하는 방식이 있었다.
고려시대 관인층은 개성 및 개성 소속의 하위 군현의 다양한 지역에 매장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개성에 거주하는 고려 관인층은 확인된 사례의 46.3~48.4% 즉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매장지로 송림현을 선호하였다. 이어 우봉군, 덕수현 등을 선호하였으나, 그 선호 비율은 송림현의 1/6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토산현, 마전현, 적성현, 파평현에 매장지를 마련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고려전기에 고려시대 관인층의 매장지는 특정한 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 위치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무신집권기까지 계속된다. 단 이 시기에 들어와 지방에 무덤을 쓴 사례가 처음 나타난다. 충렬왕대 이후 들어와 고려 관인층이 매장지를 마련한 지역은 큰 변화를 보인다. 우선 지방에 무덤을 쓰는 현상이 확대되었다. 더불어 개성 거주 고려 관인층의 30% 이상이 대덕산이란 특정 산에 매장지를 마련하였다. 고려후기에 들어와 장례 기간이 짧아지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길지를 점쳐 매장지를 마련하던 관행은 힘들어졌고, 따라서 개성에서의 접근성, 풍수지리상의 이점, 교통의 편의성 등을 고려하여 개성 거주 고려 관인층이 대덕산이란 특정 산에 망자의 무덤을 집중적으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매장지의 위치 표기
Ⅲ. 매장지의 분석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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