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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광균 ((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문화재 해양유산연구 제20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275 - 31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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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도 서해안에는 적지 않은 유인도서가 존재하였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입도하여 생활했지만, 조선전기 중앙정부가 추진한 공도정책空島政策[섬을 비우는 정책]에 따라 도서는 국가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양란이 끝난 17세기 이후 홍주목 부속 도서에는 입도민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입도의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륙에 비해 가벼운 부세 부담, 군역 도피, 원산도와 삽시도 등 도서목장의 폐지에 따른 경작지 확대, 풍부한 어족자원과 해산물 등이 핵심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중 17세기 후반 홍주목 부속 도서 중 규모가 가장 크고 해로 요충지였던 원산도에 충청수영의 우후가 주둔하면서 이 일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도서민이 증가하자 국가는 점차 도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도서민을 파악하고, 그들을 실질 지배하고자 했다. 홍주목에서는 이 섬들을 면리로 편제하여 통치하였다. 이 섬들은 기본적으로 홍주목 용천면의 소속된 리로 편제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도서들의 분동分洞으로 면리편제는 더욱 세분화되었다. 국가와 홍주목이 주도한 면리편제는 부세와 민역 등을 징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따라서 17세기 이후 서해 도서에는 여러가지 세역이 부과되었다. 기본적으로 해세海稅라고 불리는 어염선세漁鹽船稅 등 외에 전복 진상, 군사시설의 군역 충정, 홍주목의 세곡을 수납하기 위해 바다에서 경강선을 잡는 착선역, 바다에 빠진 세곡을 건져내는 구증역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세역은 중앙각사와 궁방, 홍주목, 충청수영 등 여러 기관에 의해 다층적으로 부과되었고, 이는 도서민의 부세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도민들의 세역 부담은 19세기에 더욱 과중했는데, 이를 바로잡고자 충청수사와 어사들은 서해 도서를 충청수영으로 귀속하여 세역을 일원화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19세기 중엽 원산도에 원산별장진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그 외의 도서들은 여전히 중층적이고 복잡다단한 세역에 시달려야 했다. 서해 도서의 세역 부담을 일원화 하려는 노력은 공교롭게도 충청수영이 폐지된 직후인 1901년(광무 5)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충청수영 폐지 이후 수영은 보령군으로 합속되었는데, 이에 반대한 충청수영 영속들이 충청수영이 있는 보령군 금신면을 포함하여 종래 홍주목 부속 도서들을 합쳐 오천군鰲川郡이라는 새로운 군郡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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