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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부오 (안곡고등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62호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461 - 48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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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엽부터 신라는 줄곧 당의 연호를 사용해 왔으나, 9세기 말부터 차질이 빚어졌다. 지금까지 이문제에 대해 기초적인 검토는 이루어져 왔으나, 당시 연호오기를 둘러싼 문제점과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라말에 중국연호 수용이 지연된 배경은 근본적으로 대륙의 정치적 혼란에 있었다. 신라 내에서 새로운 연호의 공유가 지연되거나 본인이 당에서 경험했던 기존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연호 수용의 지연과 무관하게 과거의 연호를 소급 수정한 경우도 있었다. 정상적인 연호 기록이 후대의 전승 과정에서 오기된 경우도 있다. 당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天祐 연호가 지연 사용되기도 했다. 신라의 조공이 후당의 개원과 괴리된 것은 신라 왕이 후당으로부터 받은 대우가 기대보다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신라 왕은 후당으로부터 지배권을 인정받으려 하면서도 기존 연호를 후당 연호로 신속하게 대치해야 할 만한 동기가 부족한 편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요인이 연호 오기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러한 오기는 고려초에 찬술된 비문에서도 계속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당의 마지막 연호인 天祐를 지연 사용한 사례는 당을 정통왕조로 여기는 관점이 지속되었음을 반영한다. 당에서 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했던 신라말의 연호 지연이 고려초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연호가 소급 수정된 사례는 주로 승려의 중요 행적을 중심으로 그 빈도가 점차 증가해 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뒤섞여 있어 신라말의 연호 오기에 대한 수정 과정은 불규칙한 편이었다.
신라말에 지연 사용된 연호는 『삼국유사』에 인용된 일부 ‘古本’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었고, 다수의 고기류에서도 계속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왕 즉위 조의 세주도 이러한 오기가 수정되기 이전의 상황을 보여줄 것이다. 그 뒤 『삼국유사』의 저본인 일부 ‘古記’에서는 실제 연호에 맞춰 수정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불규칙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점차 실제 연호로 소급 수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갔다. 12세기 중엽까지는 고기류에서도 대부분의 지연 연호들이 사실에 맞게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과정은 신라말의 기록이 고기류를 거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수용되는 과정을 파악하는 데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라말 연호 오기의 특징과 배경
Ⅲ. 고려초 금석문에 나타난 신라말 연호 오기의 영향
Ⅳ. 신라말 연호 오기에 대한 고기류의 수용 방식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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