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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상원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98호
발행연도
2025.2
수록면
355 - 384 (30page)
DOI
10.21490/jskh.2025.2.99.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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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김한의 숙청으로부터 시작된 스탈린정권의 한인 혁명가 탄압은 1937년 12월 김단야와 박진순이 체포되어 처형됨으로써 대체로 마무리됐다. 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김단야는 당대 모스크바 한인 혁명가들의 양대 기관 중 하나이던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조선과의 과장으로 모스크바의 한인 혁명가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그가 모스크바로 귀환하기 전부터 시작된 한인 혁명가들에 대한 숙청의 바람을 결국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와 함께 모스크바 한인 혁명가들 중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던 최성우와 김정하가 숙청되고 난 후 1937년 12월 2일 김단야 역시 내무인민위원부에 체포됐다. 옛 혁명 동지였던 이성태의 밀고가 그를 반혁명가이자 ‘일제 밀정’으로 몰아넣는 족쇄였다. 그에 대한 밀고가 ‘무고’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의심과 추정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자기 확신으로 이어지는 ‘무고’를 이겨내기는 힘들었다. 더구나 그를 변호해줄 수 있는 동지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지고 난 뒤였다. 결국 김단야는 이듬해인 1938년 2월 13일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처형됐다. 김단야의 숙청으로 모스크바는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배후지이자 지원처”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또한 소련의 한인들, 즉 고려인들은 자신들을 지도하고 보호해 줄 방어막을 상실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모스크바 한인 혁명가들의 지도자 김단야
3. 모스크바 한인 혁명가 탄압의 끝-김단야 숙청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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