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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원진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7호
발행연도
2025.3
수록면
313 - 354 (42page)
DOI
10.37331/JKAH.2025.03.117.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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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남북조에서 수당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자·기자조선에 대한 중국문헌의 인식 변천을 살펴보았다. 기자 전승은 위진시대에 『三國志』에서 기자조선설로 구체화되며 남북조~수당시대에 지속적으로 확산·확장되었다.
남북조시대는 고조선 지역의 지리적 고증이 시도되었으며 기자의 무덤 소재지에 대한 자료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북위 묘지명에서 낙랑 왕씨가 기자의 후손이라고 칭한 기록이 확인된다. 또한 『後漢書』 동이전은 『三國志』 동이전의 영향으로 기자-준왕-위만조선-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나타난다.
수당시대에 기자조선설은 고구려 침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명분으로 이용되었다. 이를 통해 기자조선을 강조하는 인식이 이 시기에 확산되었다. 한편 기자의 무덤이 양국 몽현에 있었다는 전승이 『史記』 三家注에 지속적으로 언급되었으며, 당대에는 하남 급군에 기자 사당이 세워진다. 이러한 자료는 기자가 고조선 지역으로 간 적이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기에는 기자조선설이 확산되면서도 실제로는 중국내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기자의 실체를 알려주는 상반된 전승이 공존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남북조시대의 기자·기자조선 인식과 낙랑유민
Ⅲ. 수당시대의 기자·기자조선 인식과 군현회복론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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