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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우창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9
발행연도
2010.9
수록면
129 - 16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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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종래 「광개토왕릉비문」에 나오는 ‘임나가라’를 가락국에 비정한 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역시 ‘임나가라’를 가락국보다는 가라국에 비정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락국이 ‘고구려 남정’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으로 상정하고 ‘가락국기’ 등 문헌사료를 이용하여 5세기 전반의 가락국과 신라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문」의 ‘임나가라’가 비록 가락국은 아니라 하더라도 가락국이 ‘고구려 남정’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며, 그 배후에는 고구려 군사력을 등에 업은 신라가 가락국 방면으로 팽창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고구려 남정’ 이후 좌지왕대 가락국은 출자가 신라로 상정되는 ‘傭女’와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일정 정도 내부 간섭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즉 이와 같은 사실은 가락국에 파견했던 실성왕대 신라의 대외팽창의지의 소산으로 향후 가락국 잠식을 위한 하나의 단초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셋째, 이후 신라는 奇計를 펼쳐 가락국을 침공하려 하였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았다. 아마도 눌지왕 치세의 신라가 되어서야 가락국은 이른바 ‘나제화호’의 한 걸림돌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에 신라는 가락국 방면으로 팽창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왜의 신라 침공과 임나가라
Ⅲ. ‘임나가라=가락국’ 설 비판
Ⅳ. 가락국의 내적상황과 신라의 팽창의지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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