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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22호
발행연도
2006.2
수록면
233 - 27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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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대 족보편찬은 신흥 사대부 가문으로서 위신을 드러내는 작업이었지만, 송대 이전 혈통적 士族의 任官과 通婚에 불가결한 검증을 위주로 했던 고대 보첩과는 내용ㆍ체례가 달라졌다. 혈통과 정치적 지위보다는 학문과 도덕의 실현자로서 새로운 士族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송대 사대부에게, 족보 찬수는 유교적 가족윤리 실천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흥 사대부들로서 확인할 수 있는 선조의 세대나 종족의 범위는 한정되었다. 대개 小宗 범위의 종족 결속을 촉구하는 소박한 족보가 만들어졌다.
남송 이후 특히 원대에 들어 중앙 관계로 진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지역적 권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한 사대부는 점차 더 넓은 범위의 족 집단을 족보에 포함시켰다. 족보찬수는 신분적 경계가 희미해지고 사회유동성이 커지는 사회에서 敬宗收族을 촉구하는 구체적인 노력인 동시에 家系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었다. 족보가 일족 내부의 사적인 기록물에서 점차 외부의 눈을 의식한 과시용으로 변화해 갔다. 남송대 이후 족보의 서문을 족외 명인에게 의뢰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官人 조상을 강조하거나 심지어 유명 官人을 선조로 假託하기도 했다. 아울러 사대부의 유가 윤리와 유교적 규범이 강조되어 족보가 실제 족인들의 현실을 기록하는 것보다는 점점 더 정형적이고 관례적인 경향을 띄기도 했다. 송원대까지 족보는, 후대에 전개될 족보의 내용과 체례를 예시하고 종족제도의 발전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지배층인 사대부의 정체성과 사회적 전략을 반영한 산물이었다.

목차

〈국문 초록〉
1. 序論
2. 古代的 修譜傳統의 消滅
3. 宋代 族譜의 再興과 發展
4. 元代 族譜 編纂의 動向
5. 宋元代 士大夫와 族譜 修撰
6. 結論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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