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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23호
발행연도
2006.5
수록면
237 - 26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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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전라도 서부 해안과 남부 연안 서반부의 유통권을 배후에 두고 영산강을 통해 전라도 내륙부의 유통망과도 연결되고 있었다. 목포에서 영산포까지의 영산강 수로 양안에는 5리 내지 10리마다 포구가 있는데 강안에서의 상업은 이들 40여 개에 이르는 포구의 매매거래가 주를 이룬다. 영산포가 목포개항과 더불어 전남의 2대 화물집산지로 성장하게 되는 것은 광주, 나주, 남평 등의 대시장을 배후지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영산포에서 목포로 이출된 상품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미곡이었고, 일본으로 수출을 위한 현미의 이출이 많았다. 또 전통적 면화산지로 이를 원료로 목면을 제직하고 해마다 타도에 수송하는 량이 거액에 달했다. 목포에서 영산강으로 들어오는 외국산 수입품 중 가장 많았던 것은 석유였다. 석유는 점등에 주로 사용되었지만, 정미소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 곡물수출과 관련해 도정업이 발달하면서 석유의 수요가 증가했던 것이다.
이 같은 유통과정의 변동은 생산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가의 등귀와 함께 지주층이 적극적으로 미곡의 상품화에 나서면서 지주제의 강화를 초래했다. 곡물수출이 증대하면서 생산력의 증대현상도 나타났다. 종자개량은 일본미종의 도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산포 부근에도 일본미종은 상당한 수준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생산량은 많았지만 기후적 조건 때문에 제한이 많아 경작은 부농이상의 농민이나 경영에 적극성을 보이는 지주에 의해 이루어졌다.
또 대두의 수출증가와 가격등귀는 대두의 경작면적 확대로 이어졌고, 대두가 면포보다 가격조건이 나아지면서 田作에서 대립하던 면화작을 구축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대두의 경작방식도 개량되고 있었다. 가격체계의 변화가 면작의 대두작으로의 전환, 그리고 대두수출 증가와 방적사수입이라는 무역과 생산구조의 변동을 가져오는 과정을 영산강 유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영산강 유역과 전라남도 내륙부의 상품유통의 집산지였던 영산포는 대외무역과 원격지 교역의 거점이었던 목포와 상호 연계하여 발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유통구조는 변모되어 갔다. 그 변모는 상품생산구조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목포의 국내외 수출입구조
3. 영산강유역과 목포의 상품유통
3. 榮山江 유역의 생산구조 변동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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