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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홍주 (국립고궁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7號
발행연도
2010.9
수록면
5 - 47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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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필 채색인물화는 왕의 명에 의해 그려지거나 궁중을 중심으로 제작된 鑑戒畵, 관료들의 모임을 기록하는 契屛 등으로 제작되었다. 많지 않은 현전작품과 기록으로 볼 때 17세기 이전 공필 채색인물화는 기마ㆍ수렵, 琴棋書畵 등 주제와 화풍 면에서 중국 원체 인물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明君暗君圖, 耕織圖, 孝子圖 등의 감계화로 병풍 형식이 특히 애호되었다.
17세기는 이전까지 조선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중국의 화적과 판화 삽도가 포함된 각종 서적의 유입으로 다양한 인물화 화제가 조선으로 전해졌다. 또한 궁중화원 출신으로 인물화에 능했던 중국인 화가 孟永光이 내조하여 보다 구체적인 중국 院體 인물화풍이 조선에 전해졌다. 조선 내부적으로는 17세기부터 병풍형식의 계회도가 유행하면서 채색인물화가 그려지는 주된 화면이 되었으며 인조와 숙종은 서화를 좋아하며 적극적으로 회화 제작을 지시하여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다. 그들이 총애한 맹영광과 이명욱의 그림 및 어제가 있는 그림들의 화풍으로 보아 청록산수 및 채색 인물화를 선호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군주의 선호가 도화서의 채색화풍 발달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 채색인물화에 능했던 화원 및 직업화가는 이명욱, 조세걸, 진재해 등이 있다. 화풍적으로는 산수 배경은 경물군이 화면을 지그재그로 분할하는 삼단구성이 유지되는 경향이 있고 채색은 18세기에 비해 옅고 맑은 느낌을 준다. 또한 〈東門送別圖〉와 〈權大運耆老宴會圖屛〉 등은 조선 문인 관료들의 모임을 중국 고사 속의 문인아집과 같이 표현하는 흥미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18세기에는 계병에 행사장면을 그리는 것이 정착되었으나 채색의 고사인물을 그리는 관행도 지속되었다. 채색인물화로는 유명 시문과 고사 등을 담은 화첩들의 제작이 늘어났고 이들은 세자의 교육과 관련이 깊다.
화제 면에서는 난정수계도, 서원아집도, 사녀도, 청명상하도 등 17세기에 유입된 화제들이 구영 등 명대 화가들에 의해 표준화된 구도 및 화풍으로 수용되면서 조선에서 선호된 병풍 형식에 맞추어 화면을 재구성하는 등의 변용이 일어났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요지연도, 백자도, 곽분양행락도 병풍이 즐겨 제작되었다. 이들은 중국적 주제이나 도상적 구성은 조선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길상적 성격의 그림들은 먼저 민간의 장식병풍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에는 궁중에서도 본격적으로 궁중행사에 사용되었다.
18세기 공필 채색인물화가는 김진여, 장득만, 장계만, 한후량, 한후방, 양기성, 정홍래, 진재해, 신한평, 강희언, 김득신 등이다. 18세기의 채색은 보다 짙고 장식적이며 모티브는 도식화되었다. 그림 속 여인들은 사녀 표현의 전형으로 굳어진 명대 구영의 화풍으로 그려졌으며 고정된 화본이 반복적으로 모방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7세기 이전 공필 채색인물화의 전통
Ⅲ. 인조-숙종대의 공필 채색인물화
Ⅳ. 영ㆍ정조대의 공필 채색인물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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