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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岩方久彦 (부천대)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27집
발행연도
2007.8
수록면
235 - 27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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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信使 연구는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對外關係史硏究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외면을 당한 셈이다. 기존 1차 수신사연구는 첫째, 日東記游를 통해 金綺秀의 일본인석을 밝히려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 결과 일본인식은 어느 정도 연구가 축적되었지만, 수신사의 배경이나 목적에 대한 검토는 지금도 저조한 편이다. 둘째, 통신사와 수신사의 차이점이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조선은 수신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을까. 조선은 수신사의 일본 방문을 萬國公法體制 移行이 아닌 交隣關係 복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신사는 구호회복을 관철하려는 조선의 메시지를 담고 일본을 방문했고, 김기수는 그 대변자였다. 기존 평가와는 달리 김기수는 수신사의 사명을 완수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선의 결정에는 수교논리로 등장한 舊好回復論과 倭洋分離論의 영향이 컸다. 舊好回復論과 倭洋分離論은 수교 교섭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대일관계를 과거지향적인 것으로 한정시키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日本連帶論에 대해서는 상당히 약점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양에 대한 경계는 일본에 대한 궁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연대론이 언제 조선을 침략할 논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수신사를 통해 조선과 일본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조선의 외교논리’와 ‘일본의 외교논리’로 맞섰지만 아직은 충돌보다 ‘자기완결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 시기는 아직 조일수호조규를 둘러싼 견해 차이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의 修信使파견 배경과 목적
3. 일본의 招待外交와 修信使 金綺秀
4.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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