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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철웅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5 여름호 제38권 제2호 (통권 139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7 - 34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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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왕은 즉위의례를 통해 왕위 계승의 합법성을 구현하고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고려의 즉위의례는 조선과는 달리 의례로 정리되어 전해지지 않아 역사서에 그 대략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고려 국왕의 즉위의례는 분명히 존재하였고, 이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국왕의 즉위의례는 대체로 고명(유명)→ 훙 → 즉위식 → 반조서 → 고즉위례 → 대사 등의 과정을 거쳤다.
고려시대의 즉위의례는 신라와 조선의 사례와 비교해 여러 가지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에서는 즉위 교서를 반포하였고 즉위 후에는 사면하고 문무관과 백성들에게 은전을 베풀었다. 즉위식 후에는 왕실 조상숭배와 관련된 신궁, 시조묘, 태묘 · 종묘등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 즉위를 고유(告由)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고려와 조선은 유교와 국새의 전달이 즉위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차이점도 뚜렷하여 조선의 즉위의례가 성복 후에 빈전에서 거행되었던 것에 비해 고려의 즉위의례는 당일 즉위이고 빈전이 아닌 중광전(강안전), 대관전과 같은 특정한 전각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즉위를 고하는 의례도 고려 사왕이 태묘(종묘)보다는 주로 경령전에 고하는 것에 비해 조선 왕은 종묘에 고하였다.
고려시대 즉위의례의 가장 큰 특징은 불교 의식이 즉위례의 하나로 거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려 사왕은 즉위식에서 원년에 보살계를 받았으며, 무신정권기 이후의 즉위식에서는 관정도량을 거행하였다. 고려 사왕은 불교의례를 통해 신성성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태조 이래 고려 왕들은 신성 관념을 형성하여 지속해 나갔는데 특히 제불, 혹은 신 · 불의 호위를 강조하였다. 이에 고려 사왕은 불교의례를 통해 신 · 속을 아우르는 신성한 존재임을 즉위의례에서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신집권기 무신집정자에 의한 왕위 교체, 원 간섭기의 원에 의한 즉위와 복위는 국왕의 신성성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하였다. 무신집권기 이래 거행된 관정의식은 취약한 왕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왕권의 상징인 국새는 원 간섭기에 원에 의해 수여되고 회수되었다. 원의 의지에 따라 수여되는 국새는 곧 즉위의 결정이었고 그 회수는 왕위의 박탈이었다. 이는 고려 즉위례의 가장 큰 변화 요소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즉위 사례의 검토
Ⅲ. 즉위의례의 특징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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