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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柳煥星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14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145 - 167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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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院)은 주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행려(行旅)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우마(牛馬)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원은 고려시대 불교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인적·물적 교류를 관장하는 장소로서 주목되는 곳이다. 사실 『高麗史』, 『新增東國輿地勝覽』과 그밖에 다른 문헌에서 원은 일부 언급되어 있고, 당대의 명문기와 등 실제자료에서도 원이 확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가운데 경주에서 출토된 “院”명 기와는 다연원(茶淵院), 미륵원(彌勒院), 대로원(大櫓院) 등 모두 3종류이며 5곳에서 출토되었다.
본고는 경주에서 출토된 3종류의 “院”명 기와에 대한 현황을 명문의 속성(명문의 시문형태, 방곽유무, 명문내용)과 기와의 속성(기와두께, 타날판의 길이, 타날방향, 타날문양)을 통해 살펴보고, 그 특징과 편년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3종류의 “院”명 기와를 명문의 속성, 기와의 속성, 비교유물 등을 통하여 “茶淵院”명 기와(10세기 말~11세기 말), “彌勒院”명 기와(11세기~13세기), “大櫓院”명 기와(1291) 순으로 편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즉, 이 3종류의 “院”명 기와는 10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의 고려시대 기와인 것이다.
이러한 기와의 출토지와 편년으로 볼 때, 조선시대 원의 위치가 표기된 『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과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다연원의 경우,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언급이 없고, 미륵원의 경우 그 위치가 불분명하였다. 그리고 대로원의 경우, 명문기와의 출토량, 김생과 창림사와의 연관성, 창림사지의 입지와 경관을 통하여, 대로원이 조선시대에는 오릉의 숭덕전일 가능성이 높지만, 고려시대에는 창림사지 주변일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3곳의 원에 대하여 나름의 의의를 부여하였다. 다연원의 경우 조선 초기 원이 정비되면서 어떠한 변화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미륵원의 경우 원 내에 기와가마를 번조했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었다는 점, 대로원의 경우 『高麗史』와 『東都歷世諸子記』의 내용, 명문의 관직 명칭과 내용으로 볼 때, 국가가 관여했을 만큼 경주지역 내 명망있는 원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大櫓院”명 기와에 확인되는 이계제는 성종 6년(1475)에 편찬된 『東都歷世諸子記』에 언급되어 있는 것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3종류의 “院”명 기와의 내용을 통하여 경주지역 내 원의 조와(造瓦) 시스템에 대한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3종류이긴 하지만, 흩어져 있는 경주지역 내 고려시대 “院”명 기와를 통하여 원의 존재여부 및 위치, 더 나아가 원의 조성주체와 기능을 파악하는데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경주 출토 “院”銘 기와의 현황
III. “院”銘 기와의 특징 및 편년
IV. “院”銘 기와의 출토위치에 대한 검토
V. 경주 출토 고려시대 “院”銘 기와의 의의
VI.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要約

참고문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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