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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명호 (서울역사편찬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4호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71 - 101 (31page)
DOI
10.21490/jskh.2016.08.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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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왕대는 진덕왕보다는 김춘추와 김유신에 대한 연구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들은 모반을 진압한 후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으며, 진덕왕대 추진되었던 관부정비도 차후 중대왕권의 입지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대사는 진덕왕대에 이르러 처음 설치된 실무관직으로 주요 중앙관부 10곳에 설치되었는데, 대사의 설치 시기와 내용을 검토하면 업무 증가 이외에 정치적 목적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진덕왕 5년(651) 품주를 집사부와 창부로 분리 설치한 사실을 김춘추세력의 정치적 입지 강화로 이해하는 시각은 대사 설치의 정치적 이해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는 대사 설치를 진덕왕대 실시된 일련의 정책, 그중 한화정책에 주의하여 정치적으로 일맥상통한다고 판단하였다. 한화정책이란 진덕왕 3년부터 5년까지 唐制의 도입을 칭하는 용어로, 中朝 의관 채용, 笏制의 변경, 당 연호 사용, 賀正之禮의 실시가 그것이다. 한화정책은 대외적으로는 전쟁 수행을 위해, 대내적으로는 ‘여왕의 권위세우기’가 목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왕과 眞骨(百官)의 구별 내지 수직적인 상하관계를 정립하고, 진골 신분자의 왕위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시행 이후 집사부 설치 등 관부 정비와 관직인 대사의 설치가 이루어진다. 진덕왕대 대사 설치 이전 관부의 관직 설치 내용을 보면 대부분 長級과 次級만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관부의 관직에 대부분 진골귀족이 취임하였으며, 진골귀족 1인 내지 2인이 각 관부를 대표하고 책임지며 관리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부 운영에서 대사의 설치는 한화정책의 실시와 같은 정치적 효과를 거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영이 이전까지 관부의 대표자이자 책임자였다면, 대사의 신설로 인해 영은 국왕 휘하 통치조직인 관부의 책임자이자 한편으론 관료로 한층 더 국왕과 구별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관부의 구성원으로 대사, 史와 함께 관부에 더욱 緊縛되었을 것이다. 대사의 설치는 업무의 증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과 함께 진골귀족들의 서열화•관료화를 촉진하는 또하나의 제도적 장치로 작용하였을 것이며, 그것을 통해 중대왕권 성립기반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중앙관부의 정비와 大舍 설치
3. 大舍 설치의 정치적 의미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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