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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주현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국어국문학회 국어국문학 국어국문학 제176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575 - 626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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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1919년 상해에 들어가 『독립신문』 주필로 활동했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는 없는 실정이다. 본고에서는 기존 연구의 문제점과 성과를 바탕으로 상해 『독립신문』에서 춘원의 논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규명해보았다.
그 동안 상해 『독립신문』에서 이광수의 논설을 수습하려는 노력이 몇 차례 있었지만, 정작 그 과정에 적지 않은 오류들이 개입되었다. 1920년에 간행하려던 『독립신문 논설집』에 이광수가 쓰지 않은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김종욱, 김사엽, 김원모 등도 『독립신문』에서 이광수의 논설을 발굴하여 제시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본고에서는 독립신문사의 상황, 춘원의 활동 및 문체 등에 대한 정밀한 고증을 통해 『독립신문』 논설 55편을 이광수의 작품으로 확정했다.
이번에 발굴 및 확정한 논설들에서 상해 시절 이광수의 의식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춘원은 1919년 준비론을 주장하다가 1920년 1월부터 혈전론을 내세웠다. 그의 혈전론은 안창호의 연설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920년 4월에 접어들어 그는 혈전을 하더라도 준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급진적 혈전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다. 한편 그는 논설에서 차츰 공적인 글쓰기에서 사적인 글쓰기로 나아가며, 아울러 우리, 나, 그네 등을 자유롭게 쓰기도 하고, 사투리 및 대화하는 말투를 그대로 구사하기도 했다.
상해 시절 이광수는 문필을 통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러나 그의 논설들은 임시정부와 무관할 수 없었고, 그러기에 주필로서 적지 않은 내적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독립신문』의 논설을 통해서 당대 현실에 대해 활발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춘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상해 『독립신문』에서 춘원의 주필 활동 기간
3. 상해 『독립신문』에 실린 이광수 논설 발굴의 문제점 검토
4. 상해 『독립신문』의 이광수 논설 탐색
5. 상해 『독립신문』과 이광수의 글쓰기
6. 마무리
참고문헌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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