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찬섭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31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69 - 206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다산은 요순시대와 같은 유교적 이상사회는 ‘무위이치(無爲而治)’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치자가 매우 부지런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다산이 작성한 원목(原牧), 원정(原政)과 같은 글에서도 통치의 구조를 치밀하게 짜고 다양한 정책으로 수립하여 민에게 균등할 수 있도록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관료의 처지라면 성왕(聖王)과 같은 인물을 보좌하여 능력에 걸맞게 활동하여 이상정치의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지방관이라면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민과 사직을 직접 맡은 처지여서 책무의 중요성은 왕과 다름없었다.
다산도 치자의 일원이었던 만큼 이 같은 책무를 항상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특히 다산이 말년에 작성한 󰡔목민심서󰡕는 목민관의 역할을 매우 체계적이고도 치밀하게 작성하여 최선의 고을을 만들어나가는 방도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다산이 직접 목민관을 맡았을 때도 이런 입장이었을지 궁금하다. 그 열쇠는 실제 경험하였던 곡산부사 시절에 있으므로 이 시기 다산의 목민활동을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다산은 곡산부사 시절 위로는 중앙부서의 장이나 감사, 아래로는 이서, 고을민과의 관계에서 목민의 자세를 굳건하게 보였다. 그리고 통치를 위한 고을의 기본정보를 철저하게 파악하였다.
부세 운영에 있어서는 매우 엄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었고, 요역은 공정하게 부과하였다. 그밖에도 다양하고도 세세하게 애민정책을 실현해 나갔는데 여기에는 과학기술, 의학 등의 지식도 활용되었다.
이처럼 치밀한 목민 활동을 통해 자기가 맡은 지역을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경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산은 많은 기록을 남겼고 여기서 나아가 목민의 마음을 확대하려고 하였다. 다산은 곡산시절에 ‘응지논농정소’를 작성하여 농업개혁안을 올렸으며, 호적의, 신포의 등 호적과 군포의 개혁을 다룬 글도 곡산 시절 경험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곡산부사를 마치는 시점부터는 통치에 대한 개혁방안을 많이 저술하였다. 전론, 원목, 탕론 등 다산의 가장 강력한 개혁론도 이 무렵 지었던 듯하다. 곡산부사를 지내면서 그의 시선은 고을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 전체의 통치 방향에 대해 매우 열심히 구상한 듯하다. 이처럼 다산의 곡산부사 시절 목민활동은 그의 목민학을 넘어서 경세학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이상사회에 대한 인식
Ⅰ. 목민의 실천 기회, 곡산부사
Ⅱ. 목민의 자세
Ⅲ. 애민의 실천
맺음말-이상사회 실천을 위한 목민의 심화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911-002046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