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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태훈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7집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283 - 314 (32page)
DOI
10.18496/kjhr.2017.08.5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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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조선 정부는 도서지역이 왜구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 全 島嶼地域에서 이주민을 나오게 하는 정책을 펼쳤다. 거주민의 쇄출, 중국의 황당선과 일본의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이 선택한 것은 搜討였다.
搜討는 처음에는 도서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나오게 하는데 큰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의 수는 꾸준하게 증가하였다. 조선인이 도서지역으로 이주하는 이유는 첫째, 병역을 면하기 위함이었고 둘째, 조세를 피하기 위해서였으며, 셋째는 생계유지를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수토의 목적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도서지역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외국선박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중국 황당선에 대해서는 주로 대화로 해결하는 수세적 모습을 자주 보였다. 왜구에 대해서는 전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쫒아내기만 했을 뿐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였다. 둘째 도서지역에 대한 정보파악을 하고자 하였다. 도서지역으로 이주하는 백성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세 번째 治安을 위한 목적도 있었다. 범죄자 유망민이 도서지역에 모여 정부에 저항하는 세력을 만들고 그 조직의 근거지로 삼을 수 있는 우려 때문이다.
조선시대 도서지역 수토는 크게 동해안과 서 남해안의 수토로 분류된다. 동해안 수토는 17세기 말 이후 수토제가 확립되면서 3년에 1번씩 삼척영장과 월송만호가 번갈아가면 수토하는 것이 정례화 되었다.
하지만 서·남해안의 같은 경우에는 搜討監官, 防禦使, 萬戶 등 다양한 직책이 수토를 수행하였으며, 원칙적으로 월 3회 수토를 그 정식으로 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으며 대상은 중국 황당선과 왜구, 그리고 수적으로 다양했다.
서·남해안 수토는 처음에 최소 100여명에서 최대 500여 명의 군사들이 동원되었으나 후기의 수토선은 2척에 인원수는 가까운 바다는 10명, 먼 바다는 20명의 인원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서·남해안 수토는 포작간을 동원하게 되어 있는데 이들은 수토할 때에 정찰병 역할을 하였고 지형의 특성상 크기가 큰 대맹선보다 포작선이나 작은 배를 이용하여 수토를 거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수토의 거행 시기는 대체적으로 물길이 잔잔해지는 3월이나 10월에 거행하였다. 또한 흉년이 들면 수토 거행을 정지하기도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搜討制의 실시배경
3. 서·남해안 도서지역의 搜討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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