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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세영 (부산교육대)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6권 제2호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81 - 11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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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퇴계전서』에 나타난 여러 기록을 토대로 퇴계의 일본관이 형성된 배경이 무엇이고, 그가 일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거기서 나타나는 특징이 무엇이었는가를 고찰함에 목적이 있다. 퇴계의 대일관은 초기에 형성된 조선정부의 대일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퇴계의 대일본 외교에는 유리(有理)·유리(有利)·유절(有節)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조일간의 우호를 바탕으로 민생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있었지만, 유교라는 이데올로기와 화이관에 경도된 나머지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었다.
사신으로 중국이나 일본에 가본 적이 없었던 퇴계는, 국내에서 외교담당 부서인 승문원에서 비교적 오래 근무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를 담당하였는데, 조선조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갖고 있었던 화이관과 아울러 이에 근거한 이적관과 소국관을 보여주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식의 ‘왕자불치이적론’에 근거하여 일본을 대함으로써 일본의 실체를 간파하지 못한 측면을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임진왜란 예견은 정확한 것이었지만, 대일화친의 결과 그가 주장한대로 ‘섬나라의 오랑캐가 진심으로 감동하고 기뻐하였으며’ ‘조선 임금의 덕을 찬미하고 양순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는 퇴계가 유교이데올로기에 기울어진 결과 일본의 현실을 모른채 자국중심주의에 경도된 ‘소중화 조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퇴계의 일본에 대한 관점은 성리학에 매몰된 채 세계의 변화에 무지했던 조선 지식인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 요약
Ⅰ. 서론
Ⅱ. 퇴계 일본관의 형성배경
Ⅲ. 조선과 일본, 그리고 대마도
Ⅳ. 퇴계 일본관의 특성
Ⅴ.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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