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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1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17 - 14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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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서술되어 있고, 또한 한일 고대사학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발해와 일본간의 국교 개시, 그리고 일본이 신라를 토벌하려고 하였다는 이른바 ‘신라정토계획’에 대하여 재검토하였다.
727년 발해가 일본에 처음으로 사신을 파견한 것을 일본 학계에서는 과거 高句麗國의 예에 따라 使臣을 보내온 것이고, 그 의도는 唐이나 新羅와 대항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도움을 기대하여 국교를 요구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727년 발해가 일본에 전한 國書에는 첫째, 발해가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고 扶餘의 습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둘째, 건국한 발해가 이웃(즉, 일본)과 우호를 맺기 위한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일본 학계는 8세기 중반 일본이 ‘신라정토계획’을 추진하였고, 더욱이 발해가 이 계획에 참여한 듯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가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없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발해와 일본의 통교와 상호 인식의 문제
Ⅲ. ‘신라정토계획’과 발해 관련 문제
Ⅳ.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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