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일영 (서강대)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50輯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39 - 174 (36page)
DOI
10.37981/hjhrisu.2017.12.50.13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상장례에 관련된 문화적 관습은 보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 변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며 저항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유교적 상장례를 정착시키는 문제는 ‘조선의 유교화’라는 중요한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 초기부터 국왕을 비롯한 조선 정부의 관료들은 유교적 상장례 정책에 지속적으로 힘을 기울여왔으며, 그 상장례 정책의 중심에는 삼년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삼년상은 이상적으로는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인간의 도리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삼년상을 ‘신분과 관계없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사 문제는 물론 경제 문제, 계급문제 등을 내포한 복잡한 현실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삼년상의 일반화 혹은 대중화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디게 진행되던 유교적 상장례의 정착은 연산군의 단상법으로 말미암아 전환국면을 맞이했다. 연산군은 앞선 시대의 왕들과는 달리, 단상법을 제정하여 상기(喪期)를 오히려 단축시키려고 했다. 반면 반정을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연산군의 시대를 실제보다 더욱 비유교적인 시대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유교적 이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야만 했다. 역설적이게도 유교화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했던 연산군의 ‘반작용’은 유교적 상장례에 ‘가속도’를 붙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볼 때 연산군대는 조선시대에서 공백기가 아니라, 유교화의 진행을 순간적으로 대폭 진행시킨 원인을 제공한 시대라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상장례의 유교화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살펴야할 문제인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연산군대 이전 삼년상 논의의 양상
3. 연산군대 ‘단상법’의 등장
4. 중종반정 이후 삼년상 논의의 정치성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001-001699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