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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충현 (한국폴리텍대학)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9집
발행연도
2018.4
수록면
180 - 207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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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明陵 관련 선생안을 분석하여 조선후기 능관제도의 변화를 규명하고자 했다. 명릉은 조선후기 중요한 왕릉 중 하나로 肅宗과 仁顯王后, 仁元王后를 모셨다. 숙종의 아들 중 경종과 영조 둘이나 국왕이 되었으며,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은 정조의 증조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또한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후대 국왕들이 행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明陵先生案』(K2-524)과 『明陵參奉先生案』(K2-4989)을 분석하여 조선후기 능관제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왕릉은 선대 국왕의 유택을 보전하는 공간이었으며, 현 국왕의 효성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했다. 또한 출사를 희망하거나 이미 관직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관로를 개척하는데 유용한 공간이기도 했다. 陵官職은 업무가 과중하지 않았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도성 안의 유력가와 친분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관품을 올리는데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켜 지방관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한편 능관직은 조선후기 적체된 인사를 풀어내기 위한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한정된 관직체계에서 능관은 비교적 일정하게 늘어났다. 조선후기의 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자리 중 한자리의 격을 올려 운영하였는데, 이는 초입사로를 제한하면서 기존 적체된 인력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된 것이다.
능관직은 蔭職의 淸職으로 인식되고 활용되었다. 관직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초입사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이미 관직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승진의 발판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능직은 하위관직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陵官制度의 성립과 변화
Ⅲ. 『明陵先生案』의 서지사항과 出身 분석
Ⅳ. 明陵 陵官의 運營體制 변화와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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