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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경호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1권 제1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65 - 90 (26page)
DOI
10.17068/lhc.2018.05.2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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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원 반자는 1191년(명종 21)에 본래부터 있었던 인제원이 미륵원으로 개칭될 때 승려인 道人 孝安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彌勒院의 飯子에 담긴 銘文의 의미를 재검토하고, 반자가 걸렸던 미륵원의 위치를 비정하였다. 먼저, 명문의 해독과 관련해서는 허흥식이 이전에 ‘公州 土車縣 땅의 人濟院’이라고 해독한 구절을 ‘公州 땅 車峴(車嶺) 꼭대기 또는 차령 모퉁이의 인제원’이라는 말로 재해석했다. 그 근거로는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반자의 명문이 제작연월일+제작지+봉안처+제작자+기원문+중량 등으로 구성된 점과 공주에 토거현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미륵원이 설치되어 운영된 지역은 공주에서 천안으로 넘어가는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 뒷말의 절터로 추정된다. 인풍리 뒷말 일대는 차령과 쌍령의 중간지점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현재에도 그곳에는 인저원, 인지원 등의 지명이 남아있고, 지역 주민들은 서북쪽 차령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인제원 고개, 원터 고개라고 부른다. 따라서 조선시대 인제원은 고려시대 인제원의 후신이며, 고려시대 인제원은 한 때 미륵원이라고도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미륵원이 다시 인제원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몽골 침입기의 어느 시점에 폐지되었다가 또다시 개설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 추정하였다. 미륵원이 폐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회덕에 미륵원이 생긴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미륵원 반자 명문의 재검토
3. 미륵원의 위치와 기능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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