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은정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서양미술사학회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49집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137 - 163 (27page)
DOI
10.16901/jawah.2018.08.49.137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오토 왕정(1833-1862) 기간 동안 추진된 국립고고학박물관 건립 사업을 통해서 19세기 그리스 사회 내부의 정치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외국인 친그리스주의자들로부터 자국인들로 이동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오토 정권 초기 아테네 신수도 건설과 더불어 국립고고학박물관 건축 계획을 추진한 이들은 헬레니즘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리스를 찾은 외국인들이었다. 1836년 클렌체의 〈판테크네이온〉과 1860년 랑게의 설계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들은 바바리아 왕실의 신고전주의 모델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초기 계획들 대부분은 동시대 그리스 사회의 현실과 근세 유럽인들의 이상 사이에서 큰 간극을 보여주었으며, 당시 그리스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서 실제로 구현되지 못했다. 또한 오토 정부의 경제적,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반 바바리아 정서와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고대 문화유산 관리 감독의 주체는 내국인들로 급격하게 교체되었다. 실제로 1880년대에 국립고고학박물관의 건축물과 콘텐츠를 완성한 주체는 19세기 후반 그리스 고고학의 획기적인 성과들과 더불어 성장한 카바디아스와 같은 내국인 제2세대 고고학자들이었다. 이처럼 오토 왕정 기간 동안 현대 그리스 인들에게 있어서 서유럽 친그리스주의와 고전주의는 자신들 스스로 국가적 정체성(헬레니즘)을 구축하기 위한 지지대이자 족쇄로서, 결국에는 극복해야 할 양가적인 대상이었다.

목차

Ⅰ. 서론
Ⅱ. 그리스 독립 전후의 상황
Ⅲ. 오토 왕정과 바바리아 모델
Ⅳ. 오토 왕정 말기의 전개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