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87집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135 - 156 (22page)
DOI
10.18587/bh.2019.6.87.13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불교계 3·1운동과 만해에 대한 기억과 인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을까. 3 ·1운동과 만해에 대한 기념을 처음으로 시작한 이들은 누구일가. 이 글에서는 불교계에서 3 ․ 1운동을 본격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기 시작한 시점과 주체를 주목하였다.
불교계에서 3·1운동의 기념을 본격화한 것은 해방 직후의 교단 집행부였다. 교단 집행부는 1946년 3월에 창간된 ≪新生≫이라는 잡지를 통해 불교계 3·1운동을 서술하고, 만해에 대한 추모를 본격화 했다. ≪신생≫은 불교계 3·1운동에 대한 결정적 기사를 담았고, 이후 불교계 3·1운동에 대한 역사기술은 이 기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생≫의 발간은 불교계에서 3·1운동의 기억을 불교의 역사로 공식화하는 최초의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교단을 주도한 세력은 대부분 만해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았고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왜 해방 직후 3·1운동을 기념하는 일에 앞장섰는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과 기념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만해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통해 3·1운동사를 복원하면서 만해 중심의 불교계 3·1운동관을 정립시켰다. 또한 만해에 대한 추모를 통해 만해의 계승자로 자임했다. 이들은 만해와 자신들이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면서 해방 직후 교단을 장악하고, 자신들이 표방한 ‘대중불교’를 펼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만해는 이들에 의해 청년의 지도자, 민족지사, 불교개혁의 원형이자 자신들에게 동질성을 부여해준 스승 또는 선배로서 표상되었다. 해방 직후 성립된 교단 집행부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에서의 이념갈등, 이후 불교정화 과정에서 급속히 세력을 잃고 교단에서 주도권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들이 형성한 3·1운동과 만해의 표상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만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新生≫ 에 나타난 3·1운동의 기억
Ⅲ. 만해에 대한 추모와 현실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