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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동서철학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53 - 18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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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에 살았던 여성 신사임당은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본분인 婦德을 잘 실천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서화에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꽃피운 여류예술가이다. 또한 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조선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여전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논란의 중심에서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이유가 조선이라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폐쇄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규방의 여성을 5세기 동안 꾸준히 역사의 중심에 서 있게 한 것일까? 그 힘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뛰어난 ‘화가’였기 때문일 것이고, 또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본 논고의 목적은 사임당의 서화작품에 남겨진 조선 사대부들의 발문을 살펴봄으로써 사임당에 대한 담론이 시대별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또 어떻게 평가되고, 어떻게 이미지화 되어 갔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16세기 사임당은 아들 율곡의 「선비행장」에 전하는 평가처럼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 안견의 화풍을 잇는 산수화와 포도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 신씨’로 칭송되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는 그녀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있었다. 그는 사임당을 서인의 종주인 율곡을 낳은 훌륭한 어머니로 추앙하고, 그녀를 정호・정이의 어머니 후부인과 동일시하였다. 또한 사임당의 산수화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그 이후 사임당의 산수화에 발문이 등장하지 않게 한 장본인이다. 송시열에 의해 산수화에 절묘했던 사임당은 사라지고 대신 초충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18세기에 담론을 주도했던 사대부들은 송시열의 담론을 이어 ‘율곡의 어머니임이 당연하다’는 귀결점과 함께 유교적 부덕을 갖춘 여성으로 재강조하게 된다. 유교 경전 중 『시경』과 대비시키면서 더 구체적으로 부덕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19세기 발문을 통해 나타난 사임당은 ‘모성의 대명사’로 평가되었다. 그 중심에는 평산 신씨 가문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문에 가려져 사임당의 예술성은 이미 그 빛을 잃어 버렸다고 판단된다. 사임당 서화작품 발문의 공통점들은 16세기를 제외하고 송시열 발문 이후부터는 서화 실력 자체로 평가 존재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율곡의 어머니’라는 위치로 서화의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발문을 쓴 사대부들도 대부분 율곡의 학문을 종주로 하는 서인・노론계 학자들에 의해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사임당의 서화는 ‘율곡의 어머니’라는 위치를 공고히 하는 하나의 보조물이었다. 이는 사임당 스스로의 재능인 ‘화가 신씨’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고 ‘율곡의 어머니’로 존재하게 한 한계는 있지만, 또한 ‘율곡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사임당의 서화가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양면성을 함께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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