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불교연구 제46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09 - 242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신라시대 비교적 비중 있었던 점찰법회가 고려시대에는 중요한 의례로 주목받지 못했다. 본고는 점찰법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고려 중기 이후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점찰법의 위상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고려시대 점찰법는 신라 진표와의 연관성이 크다는 점과 고려시대에 진표계의 사찰이 법상종에 속해있다는 점을 통해 법상종 교단에서 점찰법회를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았다. 법상종 교단의 세력이 크게 확장되는 혜덕왕사 소현 단계에서 태현계로 사상적인 종통을 정립하고, 진표계를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진표는 別祖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진표계의 사찰이 대거 법상종의 중요한 사찰로 자리잡고, 진표와 점찰법 등이 고려 사회에 주목받기 시작한 단초가 되었다. 이후 법상종 승려인 진억이 주도하여 고려 전기 최대의 결사체인 수정결사를 결행하는데 그 수행방법을 점찰법으로 하였다. 또 인종 대 이후 왕실 발원의 점찰회가 개설되었는데 원혼을 달래 천도하는 추선의례였다. 무주고혼들을 극락왕생시키기 위해 행해졌던 수륙재와 비슷하며, 모두 아미타정토신앙을 담고 있다는 점도 같다. 더불어 진표 자체에 대한 보살신앙과 같은 양상도 보이며, 미륵의 불골간자는 왕실의 사리신앙과 연결되는 등 다양한 신앙화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불교 신앙과 의례의 성격도 변해가는 모습을 점찰법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