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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2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47 - 8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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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언양 유배기 포은 정몽주가 지은 시를 상세하게 고찰하였다. 언양 유배기 포은의 시는 시기상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언양에서 지은 시, 종편(從便)된 후 김해에서 지은 시, 해배되어 개경으로 돌아오는 중에 쓴 시 등이 그것이다. 언양에서 지은 시는 유종원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포은과 유종원은 모두 실력과 합리성을 갖춘 신진사인(新進士人)으로서 당시의 정치현실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두 사람은 모두 권신(權臣)에게 맞서다 귀양을 가거나 좌천되었다. 그들의 시에는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슬픔과 비탄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 더 나은 공간으로 가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김해에서 지은 시들은 주로 연자루(燕子樓)와 관련이 있다. 내용을 보면 유배객의 처지에서 느끼는 안타까운 감정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지역의 풍물과 유적지, 인물에 얽힌 사연들에 초점을 맞추어 사실들을 언급하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정도였다. 훗날 포은이 쓴 「김해산성기」를 읽어보면 그가 지닌 관료, 행정가, 지략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해배 후 상경 도중에 의성과 영천 등에 들러 지은 시들에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슬픔과 절망이 느껴진다. 동시에 자신을 ‘절름발이 나귀’에 빗대며 현재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체념도 엿보인다. 포은은 또한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다스렸던 무성(武城)에 영주(榮州)를 빗대며 동료이자 명관이었던 정습인(鄭習仁)․최원유(崔元濡)․하륜(河崙) 등을 떠올렸다. 비록 해배되어 상경하는 길이었지만 그의 유자로서의 정체성, 위정자로서 민(民)을 살피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김구용(金九容)과 정도전(鄭道傳)도 유배 기간 다수의 시를 저작하였다. 이들의 시에서는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과 현실에 대한 미련, 환로에서 뜻을 펼치고픈 열망 사이에서 느끼는 깊은 갈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점은 포은의 언양 유배기 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징들이다. 포은의 시가 척약재·삼봉의 시와 다른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의 언양 유배 관련 저작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데에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배 이후 그들의 다른 행로가 보여주듯이 각자 미래를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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