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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과학원 개념과 소통 개념과 소통 제2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87 - 11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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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든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웃음은 쉽게 사라진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융통성 없는 진지함을 요구한다. 한국에서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던 1960년대에 웃음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에도 웃음의 감각이 기능할 수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였을까. 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웃음의 감각이 어떻게 존재하였으며, 그 시대주체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하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960년대 웃음의 감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던 대표적인 개념은 ‘명랑’이라는 기표이다. 명랑이라는 기표는 통시적 차원에서도 공시적 차원에서도다층적 기의를 가진다. 명랑의 의미는 전근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변화하였으며, 1960년대 정치적·사회적 담론의 차원 및 문화적 차원에서도 각각 다른 의미를 내포하며 활용되었다. 명랑은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 국가주의 규율 담론이 요구하는 ‘건전성’을 전달하는 개념이었지만, 대중문화 속에서는 ‘순응과 저항의 양가성’을 보여 주는 개념이었다.1) 웃음이라는 감각이 순응과 일탈의 양가적 기능을 수행하듯이 1960년대 명랑 또한 양가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명랑의 양가적 기능 중 일탈과 저항의 측면은 아직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1960년대 웃음의감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랑이라는 개념 속에 내포된 양가성을동시에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대표적 대중잡지 『명랑』 속에 나타난 명랑소설과 기사를 통해 일상적 문화의 차원에서 명랑이라는 개념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명랑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한정적인 기간에 집중적으로 통용되었으며, 그로 인해 의미변화의 자장이 넓은 편이다. 현재는 유쾌하고 활발한 상태나 성격을 가리키는 의미2)로, 개인의 상태나 성격을 나타내는 명사나 형용사로 활용되고는 있다. 그러나 사회적 활용빈도수는 낮은 편이다. 최근에는 유쾌하며 활발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설명할 때, ‘밝다’·‘긍정적이다’ 등의 표현을 쓰지 ‘명랑하다’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3) 이와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명랑은 사회적활용빈도수가 높은 단어였다. 명랑 관련 기사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8년과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2년 신문 지상에 자주 등장하다가, 민주화항쟁이 일어난 해인 1987년을 기점으로 줄어든다.4) 명랑이라는 개념이 전시체제기와 군사정권하에서 사회적인 담론으로 널리 통용되었다는 것은 이개념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친연성을 가진 개념으로 활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담지하던 개념이 개인의 성격을 나타내는의미로 바뀌기까지, 한 시기의 유행어가 그 효용성을 잃어버리기까지 명랑이라는 개념은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일까. 명랑은 근대 이전부터 ‘밝음’과 ‘긍정성’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자연환경 및 인간 성격 및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활용되었고,5) 특히 기후나 날씨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주 쓰였다.6)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전시체제기로 접어들면서 명랑이라는 기표의 의미는 변화한다. 명랑이라는 개념이 일제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전시체제기로 들어서면서 일제는 국가적 시책과 명령을 잘 따르는 ‘건전한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명랑한 태도와 생활을 유지할 것을요구하였다.7) 이때 명랑은 체제가 요구하는 규율과 도덕으로서의 역할을담당하게 되며, 국가주의적 의미체계 안에서 코드화되었다.8) 일제시기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개념으로 활용되었던 명랑이라는 단어는 1960년대 다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1960년대 박정희정권은 군부독재하에서 생겨나는 국민의 불만을 억제하며 경제개발 계획을 단기간에 달성시키기 위해 ‘명랑한 태도와 생활’을요구했다. 관 주도로 이루어진 ‘명랑생활운동’은 국민의 생활 개선을 강제하여 건전사회를 이룩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적 사업이었다.9) 이는 결국 현실에 불만을 품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며 국가 주도 사업에 긍정과 희망을 가지는 태도를 가질 것에 대한 요구이며, 건전한 국민이 될 것에대한 요구였다. 이처럼 명랑은 국가주의적 구호로 활용되며, 당대를 주도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명랑이라는 개념이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시대의 이념을 대표하는 단어로 쓰일 수 있었던 것은 이 개념이 이러한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 전달에 용이하게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주의적 구호를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용어가 대중문화에까지 널리 퍼지면서 대중적 유행어가 된 것은 이개념의 의미자장이 국가주의적 의미체계를 넘어서는 어떤 지점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명랑이라는 개념에 대중의 욕망이 자발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은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강압적인 이데올로기라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명랑이라는 단어는 새 사회 건설의 기대와 소망이 수렴하는 기표로 작동10)하였다. 대중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열망을 명랑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표현으로 나타내었다. 이 시기 명랑은 대중이 희망하는 새로움, 건전성, 미래에 대한 낙관을 담아내던 개념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 4·19 이후 1963년 박정희군부가 민정 이양의 약속을 폐기할 때까지 이어졌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사회적 담론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사회적 담론 속에서 명랑의 개념이 대중 사이에 유행하면서, 문화적으로도 명랑이라는 개념을 적극 수용하였다. 대중문화에서 명랑이라는 개념은 명랑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정착하였다. 명랑소설은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장르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근대적 코미디장르는 일제시기부터 발달하였는데, 그 당시 웃음을 유발하는 서사는 ‘유모어소설’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11)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명랑이라는 개념이 국가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주요한 개념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코미디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의 장르 명칭은 명랑소설로 바뀌게 되었다. 명랑이라는 개념의 인기처럼 이 시기 명랑소설은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한국 코미디장르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명랑소설은 한국 코미디장르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보여 주기 때문에도 중요하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그 극적인 변화를보여 주는 명랑이라는 개념을 대중이 어떻게 수용하고 있었는지를 나타내주기 때문에도 중요하다. 1960년대 명랑소설 속에서 명랑의 개념은 사회적담론 속에서 통용되던 건전성과 문화적 양식인 코미디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결합되면서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명랑소설에 나타난 명랑의 의미는 사회적 담론이 흘러간 방향과 조금 다른 경로를 걷게 되었다. 사회적 담론 속에서 명랑은 건전성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라는 기존 의미를 유지하였고, 이는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직접적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문화적 영역에서 작동한 명랑소설 속 명랑은 코미디장르의 기본적인 속성을 유지하면서 명랑이라는 개념의 보수화과정에 균열을 일으키고저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논문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명랑소설이라는 장르 그리고 명랑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며 명랑소설 속 명랑이 당시 사회적 담론과 거리를 두는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명랑의 개념이나 명랑소설에 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1950년대 형성된명랑의 건설적 가능성이 1960년대로 들어서면 정권 주도의 규율체제와 접속하면서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정리하고 있다.12) 김현주와 이선미는 1950년대 대중잡지 『아리랑』에 실린 명랑소설을 분석하면서, 1950년대의 명랑소설 속 명랑성은 전후 사회를 재건하고자 하는 대중의 낙천적이고능동적인 감각을 드러내었지만,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체제가 요구하는 현실에 긍정하고 순응하는 건전한 삶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보수화되었고, 이로 인해 명랑소설의 창작 동력이 약화되었다고 정리하였다. 김지영은 전근대에서 1970년대까지 명랑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동시에 대중잡지 『명랑』을 중심으로 1950∼1970년대의 명랑소설 속 명랑성의특징을 분석하였다. 명랑의 역사적 의미론을 분석한 논문에서는 정치적·사회적 담론 속 명랑의 의미와 상업적인 대중문화 속 명랑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분석하였다. 여기에서 김지영은 대중문화 속 명랑이라는 개념이 순응과저항의 양가적 기능을 한다고 결론적으로 정리하였으나, 대중문화 속에서명랑의 개념이 저급성을 획득한 과정을 분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서, 명랑 개념에 내포된 저항적 기능을 실질적으로 분석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명랑소설 속 명랑성을 분석한 논문에서는 1960년대 중·후반 명랑소설 속 명랑성이 기형적 욕망을 배설하거나 엽기적이고 기괴한 그로테스크한 웃음을전달하면서 1950년대의 건전성 지표를 유지하지 못하고 좌초된다고 분석하였다.한국사회에서 명랑이라는 개념이 건전성이라는 성격을 중심으로 작동하였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명랑소설 속에 나타나는 명랑의 개념과 이를 통해나타나는 웃음의 감각 속에는 건전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감각들이 내포해 있다. 1960년대 중·후반 명랑소설은 건전성과 정상성을 뛰어넘은 비정상적인 타자의 출현으로 이질적이고 엽기적인 상상력이 틈입하며웃음의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과 비정상의경계 위에서 웃음의 거리감각을 유지하며 웃음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명랑이라는 개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건전성’이라는 의미 외에 명랑의 또 다른 기의인 ‘거리감’에 주목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중·후반 대중잡지 『명랑』 속 명랑소설을 통해 웃음의 거리감각이 기능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이러한 거리감각이당대 대중의 일상과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을 어떤 주체로작동하게 하였는지 알아볼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how laughter, and a sense of humor, were manifest in the 1960s, and what this made possible for the subject of that era. A representative concept at the time was myeongrang (cheerfulness). This concept was used to uphold the integrity of the prevailing national ideology in political and social discourse, but it was also used as a descriptive term for the comedic genre in the cultural discourse of the era. Its usage in the cultural discourse extended to senses not included in the national ideology. This paper focuses on humorous novels and articles in the representative popular magazine Myeongrang (Cheerfulness) to reveal a popular rejection of the ideal subject demanded by the nation. Thus, humorous novels maintained a sense of distance from the hardworking and productive men favored as national role models, making them the butt of ridicule. Instead, these novels embraced active, independent and sometimes vain young women who experienced criticism from society and the nation. The typical readers of Myeonrang (Cheerfulness) were urban youths, who enjoyed the way that humorous novels and articles brought the ideal subject into derision, revealing a cultural appreciation which could not be reduced to a commercial culture, nor to a national ideology. They sought to enrich their lives through these cultural tastes, which allowed them to distance themselves from a patriarchal order focused purely on economic production. Urban youth deployed humor to reject that kind of life, and the shared identity thus generated enabled them to form their own subculture, which was not included within the prevailing national ideology. This cultural experience subsequently served as a foundation for the popular propagation of a resistive youth culture during the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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