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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이화음악논집 이화음악논집 제23권 제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07 - 13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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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27-1935년 사이 이화여자전문학교(梨花女子專門學校) 글리클럽(Glee Club)에 대한 연구이다. 1886년 스크랜턴(Mary F. Scranton)에 의해 설립된 이화학당은 1925년, 문과와 음악과를 갖춘 여성 최초의 전문학교로 재정비한 후 조선민요를 조선 전통문화의 요체로 인식하면서 국악연구 및 글리클럽을 음악과의 커리큘럼으로 도입하였다. 1927년 이후, 이화여전 음악과는 선교사 메리 영과 안기영의 합작(collaboration)으로 『조선민요합창곡집』을 출판하고 레코드로도 전곡을 취입하는 등 매우 근대적인 행보를 이뤄내었다. 또한 전국순회 연주회를 통해 ‘조선 신여성의 민요합창’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리클럽의 음악활동은 음악계 및 기독교계 모두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음악계에서는 조선 재래음악을 오선보로 만들고 합창음악으로 편곡하여 서구화하였다는 이유로, 기독교계로부터는 미션스쿨 여학생들의 민요합창이 기생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1935년 이후 글리클럽은 서구 합창음악을 재현하고 모방하는 레퍼토리로 전환하고 1930년대 말에 이르면 ‘국민음악의 밤’이나 ‘기원절봉축의 밤’ 등 관주도의 음악행사에 동원되면서 제국의 충실한 국민이 되어가는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비록 10년이 채 못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시기 글리클럽의 활동은 서구음악의 일방적 수용자를 넘어 한국의 전통음악을 통해 선교지 현장을 반영하려고 시도했던 음악적 성취였다. 당시 제도권 사회의 공격과 반발은 글리클럽의 사회적 행보에 불편함과 위기의식을 느낀 가부장제 사회의 반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기 글리클럽 프로젝트의 대중적 성공과 이에 대한 제도권 사회의 저항은 ‘전통사회’와 ‘근대사회’, ‘전통음악’과 ‘서구(기독교)음악’, ‘여성의 사회진출’과 ‘가부장제 규율권력의 저항’ 등 갈등과 혼돈을 거듭하던 식민지 근대성의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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