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3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 - 38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여진족이 평안도 渭源을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선조는 유성룡을 四道都體察使에 임명하였다. 유성룡은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무기·군량미의 마련·방어 시설의 개편 등 방비책을 마련하였고, 이러한 방책을 예하 지휘관에서 이문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는 1598년 봄에 사직할 때까지 사도도체찰사를 역임하였다. 그가 사도도체찰사를 사직하자, 사도도체찰사부도 혁파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사도도체찰사를 역임하면서 작성하였던 문이와 계사를 등출하여 成冊하고 『군문등록』이라 명명했다. 이것이 초본 『군문등록』으로 1595년 10월부터 1596년 12월까지 유성룡이 작성하였던 문이와 체찰사의 뜻으로 종사관이 올린 계사들이 수록되어 있다. 초본 『군문등록』은 유성룡의 행적, 북방에 대한 방어책, 조선의 군사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임진왜란과 유성룡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등록은 문서를 베껴 엮은 문헌이라 할 수 있다. 『군문등록」은 사도도체찰사군문의 군사 행정과 방어 대책 등의 전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초본 『군문등록』은 유성룡 사후 후손들에 의해 16권본 『징비록』이 간행되는 과정에서, 간본으로 재구성되었다. 16권 『징비록』 권15~16에는 초본 『군문등록』의 문이의 일부만을 선별·수정하여 『군문등록』으로 수록되었다. 간본 『군문등록』은 초본 『군문등록』과 판본을 비교·검토를 통해 체재와 구성에 많은 변개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간본 『군문등록』은 초본의 문이 41건만이 수록되었고, 계사는 일부가 수정되어 편입되었을 뿐 거의 수록되지 않았다. 그것은 16권본 『징비록』 「芹曝集」이 유성룡의 차자와 계사를 성책한 것임을 볼 때, 간본 『군문등록』의 계사는 모두 삭제하여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초본 『군문등록』은 계사를 제외한 문이만을 선별·수정하여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군문등록』은 사도도체찰사의 군사 행정의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조선 조정은 건국 초기부터 국가적 차원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도체찰사를 파견하였는데, 그 활동에 대해서는 실록에 단편적인 내용만이 수록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반면 『군문등록』에는 1595년 10월부터 1596년 12월까지의 정국 동향과 군사 행정의 실상과 군사 훈련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군제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군문등록』은 16권본 『징비록』의 일부로서 『징비록』의 저술과 성립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유성룡은 『징비록』의 서문에서 이 책을 찬술한 후 차자와 계사, 문이를 부록하였다고 밝혔다. 문이가 바로 『군문등록』으로 유성룡은 이 책을 『징비록』 찬술의 자료로 이용하였고, 후대에 16권본 『징비록』의 일부로서 수록·간행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간본 『군문등록』은 『징비록』을 사학사적으로 고찰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