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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병훈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43집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379 - 41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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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우탁을 제향하는 서원은 예안의 역동서원, 영해의 단산서원, 단양의 단암서원, 안동의 구계서원이 있었다. 이들 서원은 각각 우탁이 관직을 사임하고 내려와 거주했던 곳, 첫 부임지, 고향, 노후에 활동을 하였던 곳이라는 이유로 건립되었다. 또한 역동‧단산‧단암서원은 해당 고을 최초의 서원으로서 향론<SUB>鄕論</SUB>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 가운데 역동과 단암서원은 사액<SUB>賜額</SUB>을 받았다. 이처럼 한 인물을 여러 서원에 제향하는 첩설<SUB>疊設</SUB>은 유현<SUB>儒賢</SUB>으로 칭송받는 인물들만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우탁과 같은 고려시대 인물이 첩설되는 사례는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황이 같은 고을에 살았던 우탁의 학문과 절의<SUB>節義</SUB>를 높게 평가하고 존숭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황의 제자들이 예안에서 역동서원 건립을 주도하고, 이황 역시 건립의 전 과정에 직접 관여하면서 큰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 후 영해의 사림들도 역동서원을 모범으로 하여 우탁을 제향하는 단산서원을 세웠으며, 단양의 사림들은 단암서원을 건립했다.
하지만 우탁의 위상에 확고하지 못하였기에 단산서원은 이곡과 이색 부자를 함께 제향하고, 단암서원은 단양군수를 지내었던 이황을 함께 제향하였다. 한편 역동서원은 같은 고을에 이황을 제향하는 도산서원이 건립되면서 그곳의 부속 서원으로 전락하였다. 그 이후 원장을 지냈던 김령을 함께 제향하려는 논의가 있기도 했다. 구계서원은 안동의 남인계 사족들이 향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당시 서원 신설을 금지하는 왕명이 있었기에 이를 피하여 기존의 서당과 우탁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을 결합하였다. 그 후 구계서원에서도 향내의 인사들을 추가로 제향하려는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우탁은 이황에 의해 도학상의 지위가 인정되면서 유현으로 존숭되었지만 고려시대 인물이었기에 그를 제향하는 서원의 위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서원에서 해당 고을의 인사를 함께 제향함으로써 사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나아가 서원의 위상을 더 높이려고 했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우탁에 대한 이황의 학문적 위상 정립과 별묘 건립
3. 우탁 제향 서원의 건립추이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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