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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인 (서울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7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79 - 31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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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화담학파(花潭學派)의 학자 고청 서기(徐起)의 학문 내용을 백가중기(百家衆技), 불교, 성리학으로 나누어 연구한 것이다. 생애를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고 시기별 지적 편력에 따라 고찰한 것이다. 그는 20대까지 호서(湖西)의 내포지역(內浦地域)에서 불교와 백가중기를 섭렵하고, 20대~30대에는 이지함(李之菡)과 이중호(李仲虎)를 만나 성리학에 입문하고, 50대에는 공주(公州)에 공암서원(孔巖書院)을 세워 문인을 양성하였다. 그의 학문 내용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 첫째 서기는 내포지역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젊은 시절 홍주(洪州)에 살면서 주변 사찰에 오가며 불경(佛經)이나 선서(禪書)를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으로 16세기 지방사회는 중앙과 달리 불교의 영향력이 상당했던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최치원과 인연이 깊은 성주사(聖住寺)나 김시습(金時習)이 말년을 보낸 무량사(無量寺)와 같이 당시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찰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거주하였다. 묘갈명은 그가 불교를 흠모했다고 했으며, 묘표는 그를 거사(居士)로 기억했다. 18세기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김창흡(金昌翕)은 그를 승려 영관(靈觀)과 같은 부류라고 평가했다. 둘째 서기는 천문과 지리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경험하였다. 박지화는 이를 백가중기라고 표현했다. 처사성(處士星)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관측하고 송익필(宋翼弼)이 보은(報恩)으로 왔다고 해석했다거나 「동방분야도(東方分野圖)」를 제작했던 일화에서 천문학의 지식이 상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입향조인 공주 공암리에 남아있는 비보풍수(裨補風水)의 흔적에서 풍수지리에 밝았음을 엿볼 수 있다. 도교에 정통했던 정렴이나 박지화와 친교가 깊었고, 노인성(老人星)을 보러 제주도로 여행한 것에서 도교문화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서기의 사서(四書) 해석은 명대(明代)의 학술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대학󰡕 전6장과 전10장의 해석이 주희의 정통적인 해석과 다르다는 점에서 명대의 주석서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선후기 경학사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것도 이와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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