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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환국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 제7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31 - 26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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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세기 초 허균과 이정(李楨)의 만남과 교유, 즉 당대의 문제적인 문인과 화가의 문예교(文藝交)의 실상과 그 문예사적 의미를 조명한 것이다. 이정은 화원 집안 출신으로 29세에 요절한, 불화와 산수화에 천재적인 기량을 발휘했던 화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 허균의 망년지교는 이 시기 문예사의 중요한 한 국면을 웅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동안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나 관심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 글은 허균이 이정과 동행하면서 남긴 기록물을 통해 그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복원하고, 그와 허균의 교유가 이 시기 문예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허균이 당시 남다른 교유와 문예물을 통해 혁신적인 사유를 남겼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정과의 교유에는 취향뿐만 아니라 ‘그림’과 ‘불교’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더구나 허균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이정에게 매료되어 산수화뿐 아니라 그의 불화에 심취하게 되었다. 또한 불교와 문예 관련 화첩(畵帖)을 함께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 화첩 제작에는 서북 출신으로 중심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명필 한호(韓濩)도 동참하였다. 당대 최고의 문인과 서화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문예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런 교유와 결과물은 당대에서 매우 불온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불온한 문예물과 이들의 존재는 이 시기 낭만풍의 문예가 진작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결과적으로 조선 르네상스 시기라고 부를 수 있는 16세기 말 17세기 초는 이정과 허균 같은 문제적인 인물의 등장과 만남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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